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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중요하죠' - 나이 핑계 대기

'경험이 중요하죠' - 나이 핑계 대기

'경험이 중요하죠' - 나이 핑계 대기 오늘도 또 들었다 "대표님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투자자 미팅. 30분째 서비스 설명했다. MAU 그래프 보여줬다. 유저 피드백 공유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온 질문이 이거다. "아, 26살입니다."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한다. 표정이 달라진다. '아, 학생이구나' 하는 눈빛. "아직 젊으시네요. 졸업은 하셨나요?" 여기서 내가 하는 말이 정해져 있다. "휴학 중인데요, 저희 세대는... 아니, 요즘은 나이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이 말 한 지 벌써 1년 반. 처음엔 진짜 믿었다. 나이? 그게 뭐 대수냐. 내 서비스가 증명해줄 거다. 근데 요즘은 나도 모르겠다. 이게 설득력이 있나? 아니면 그냥 나이 핑계 대는 건가? 어제 새벽 3시 인스타 피드 넘기다가 멈췄다. 동기 녀석이 올린 글. 대기업 입사 인증샷. "드디어 사회인!" 캡션에 축하 댓글 30개. 나는? 사무실도 없다. 카페에서 일한다. 팀원들 월급 100만원 주는 것도 빠듯하다. "경험이 중요하지." 혼자 중얼거렸다. 근데 누구 설득하는 건지 모르겠다. 투자자? 아니면 나? 새벽 4시에 잤다. 다음 날 오후 1시에 일어났다. 카페 갔다. 노트북 켰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 이게 경험인가? 아니면 그냥 시간 낭비인가?나이 핑계의 진실 솔직히 말하면. 나이 때문에 안 되는 게 있다. 투자자들 말투가 다르다. "대표님" 이라고 부르는데 존댓말 쓰는데, 눈빛은 "학생" 보듯이 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아이디어가 좋아요." 칭찬 같지만 칭찬 아니다. '젊은 친구'라는 말 속에 '경험 없는 애'가 들어있다. 미팅 끝나고 나오면 팀원들이 물어본다. "어땠어?" "글쎄. 검토해본다네." 검토. 돌려 말하는 거다. '나이 좀 더 먹고 와' 라는 뜻이다. 억울하다. 나도 1년 반 했다. 밤새워서 개발했다. 유저 피드백 받고 피봇했다. 이게 경험 아닌가? 근데 그들이 원하는 건 다르다. 대기업 경력. 몇 년. 직급. 프로젝트 규모. 그런 거. 내가 말하는 '경험'이랑 그들이 말하는 '경험'이 다른 거다.그래도 하는 말 "경험이 중요하죠." 이 말 안 할 수가 없다. 왜냐면. 이거라도 안 하면 뭐라고 하냐고. "네, 어려서 부족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끝이다. 투자 안 받는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죠"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다고 한다. 그래서 찾은 게 이 말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적당히 겸손하다. 적당히 자신있다. 적당히 무난하다. 근데 이 말 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나 자신을 변명하는 것 같다. 핑계 대는 것 같다. 26살이 잘못인가? 휴학이 문제인가? 졸업장이 없어서? 억울하다가도, 거울 보면 어려 보인다. 아직 턱수염도 안 난다. 정장 입어도 학생 같다. 미팅 전날 밤. 정장 입어본다. 거울 본다. "설득력 있나?" 혼자 물어본다. 대답 안 한다. 그냥 정장 입고 간다. 부모님 전화 한 달에 한 번. "준아, 학교는 언제 가니?" "엄마, 지금 사업 중요한 시기라서."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 친구들 다 취업했다며?" "엄마, 요즘은 나이보다 경험이 중요해." 또 이 말이다. 부모님한테까지 쓰는 말. "그래, 그래. 근데 너 밥은 먹고 다니니?" 전화 끊고 나면 한숨 나온다. 부모님도 설득 못 하는 말로 투자자를 설득한다고? 웃긴다. 근데 어쩔 수 없다. 다른 말이 없다. 26살. 창업 1년 반. 매출 아직. 졸업 안 함. 이 스펙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다. "경험이 중요합니다." 팀원들 앞에서 더 웃긴 건. 팀원들한테도 이 말 한다. 다들 나랑 비슷한 나이다. 24, 25, 26살. 동아리 후배, 과 친구들. 월급 100만원 받는다. 카페에서 일한다. 주말도 없다. 가끔 물어본다. "형, 우리 이거 되는 거 맞지?" "당연하지. 우리 경험 쌓고 있잖아." 또 이 말이다. 근데 얘들 눈빛이 흔들린다. 나도 안다. 이 녀석들도 인스타 본다. 동기들 입사 소식 본다. 초봉 4천만원 본다. 그리고 자기 통장 본다. 100만원. "경험이 중요하지." 내가 먼저 말한다. 얘들 설득하는 건지, 나 설득하는 건지 모르겠다. 회의 끝나고. 한 녀석이 조용히 물어봤다. "형, 솔직히 불안하지 않아?" "...응. 불안해." 처음으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녀석이 웃었다. "나도. 근데 형 믿고 한다." 그 말 듣고 나서. 더 불안해졌다. 진짜 경험이 뭔데 새벽에 생각한다. 경험이 뭐냐고. 1년 반 동안 뭐 했나.개발 배웠다. 독학으로. 유저 피드백 받았다. 직접. 피봇했다. 세 번. 투자 미팅 다녔다. 20군데. 거절당했다. 19번. 팀원들 월급 챙겼다. 내 돈 없어도. 밤샜다. 100일 넘게.이게 경험 아닌가? 근데 투자자들은 이걸 경험이라고 안 본다. 대기업 3년이 스타트업 1년 반보다 낫다고 한다. 억울하다. 근데 반박할 수 없다. 왜냐면. 내가 만든 서비스가 증명 못 하니까. MAU 2만. 매출 0원. 숫자가 말해준다. "경험이 중요하죠" 라고 말하는데, 정작 그 경험으로 만든 결과가 이거다. 웃긴다. 슬프다. 화난다. 그래도. 계속할 거다. 이게 핑계든, 변명이든. 내일 미팅 또 투자자 미팅이다. 오늘도 준비했다. 피치덱 수정했다. 정장 준비했다. 대답 연습했다. "대표님 나이가?" "26살입니다." "젊으시네요." "네, 하지만 요즘은 나이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울 보면서 연습한다. 설득력 있나? 모르겠다. 근데 이 말밖에 없다. 26살이 할 수 있는 말이 이거다. 시계 본다. 새벽 3시. 내일 미팅은 오후 2시. 11시간 남았다. 9시간 자고, 1시간 준비하고, 1시간 이동한다. 근데 잠이 안 온다. 유튜브 켠다. '20대 성공한 창업가' 검색한다. 영상 본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댓글 본다. "나이는 핑계다." "열정이 전부다." "경험은 만드는 거다." 맞는 말이다. 근데 위로가 안 된다. 영상 끈다. 노트북 덮는다. "경험이 중요하지." 혼자 중얼거린다. 내일도 이 말 할 거다. 모레도, 다음 주도. 이게 핑계인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근데 이 말 하면서. 진짜 경험을 쌓고 있다. 거절당하는 경험. 불안한 경험. 증명해야 하는 경험. 어쩌면 이게 26살의 진짜 경험인지도.내일도 또 들을 거다. "젊으시네요." 그리고 또 말할 거다. "경험이 중요하죠." 언제까지 이 말 할지는 모르겠다. 근데 이 말 안 해도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는, 계속 핑계 대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