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전화는 왜 자꾸 피하게 될까
- 04 Dec, 2025
부모님 전화는 왜 자꾸 피하게 될까
통화 거부 21회
엄마 전화가 또 왔다. 화요일 저녁 8시. 이번 주만 세 번째다.
“나중에 할게요” 문자 보내고 거절 버튼을 눌렀다. 스물한 번째다. 지난달부터 세고 있다. 왜 세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숫자로 만들면 덜 미안할 것 같아서.
팀원들이랑 회의 중이었다는 핑계를 댔다. 실제로는 카페에서 혼자 틱톡 보고 있었다. 경쟁사 분석이라고 하면 일인데, 사실 그냥 보고 있었던 거다.
전화를 안 받는 이유를 안다. 통화하면 딱 세 가지가 나온다.
“밥은 먹냐” “돈은 있냐” “졸업은 언제 하냐”
처음 두 개는 대충 넘어간다. “네 먹어요”, “있어요” 하면 끝이다. 근데 마지막 질문. 이게 문제다.

졸업이라는 단어
“졸업은 언제 하냐”
이 질문 앞에서 나는 27살이 아니라 중학생이 된다.
숙제 안 한 거 들킨 중학생. 학원 빠진 고딩. 용돈 다 쓴 대학생. 그 시절로 돌아간다. 목소리도 작아진다.
“아… 그게… 다음 학기에…”
거짓말이다. 다음 학기에 복학할 생각 없다. 지금 복학하면 회사 접어야 한다. 매일 수업 들으면서 개발하고 투자 미팅 돌 수 없다.
근데 그걸 어떻게 말해. “엄마 나 학교 안 다닐 거 같아. 회사가 잘 될 것 같거든.” 이렇게?
지난번에 한 번 말했다. 작년 설날에.
“저 복학 좀 늦출게요. 회사가 지금 중요한 시기라…”
아빠가 끊었다.
“중요한 시기가 언제 안 중요하냐. 졸업장 없으면 나중에 후회한다.”
그 후로 안 꺼낸다. 엄마는 가끔 물어본다. 나는 “다음 학기요” 만 반복한다.
거짓말이 쌓인다. 통화할 때마다 쌓인다. 그래서 전화를 안 받는다.
5000만원의 무게
엔젤 투자 5000만원 받았을 때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투자 받았어. 5000만원.”
“우와 대단하다. 근데 그게 뭐냐?”
설명했다. 회사 지분 15% 주고 받는 돈이라고. 이걸로 1년은 버틸 수 있다고. 팀원들 월급도 주고 마케팅도 하고.
“그래 잘됐다. 근데 졸업은 하고 하는 거지?”
또 졸업이다.
그때 깨달았다. 엄마한테 5000만원은 그냥 숫자다. 투자도, 지분도, 런웨이도 다 외계어다. 그냥 “우리 아들이 뭔가 하고 있구나” 정도.
진짜 중요한 건 졸업장이다. 눈에 보이는 거. 액자에 걸 수 있는 거. 친척들한테 자랑할 수 있는 거.
“조카 대학 졸업했어요. 좋은 데 취업했고요.”
이게 엄마가 원하는 문장이다.
“조카 회사 차렸어요. 투자 받았고요.”
이건 불안한 문장이다. 불안한 자랑이다.

동기들의 인스타
어제 대학 동기 인스타를 봤다. 민석이.
입사 인증샷이었다. 네이버 사옥 앞에서. 정장 입고. 사원증 목에 걸고.
“드디어 사회인 1일차 :)”
좋아요 342개. 댓글 67개.
“축하해!” “부럽다ㅠㅠ” “네이버 대박” “민석아 저녁 쏴”
스크롤 내렸다. 지훈이도. 삼성전자. 수빈이도. 카카오.
다들 입사했다. 졸업하고 취업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루트를 탔다.
나도 댓글 달았다. “ㅊㅋㅊㅋ” 하트 이모티콘 세 개.
근데 속으로 계산했다. 민석이 연봉 5500만원쯤 될 거다. 네이버 신입이면. 지훈이는 6000 넘을 수도.
나는? 우리 회사 통장에 3400만원 남았다. 이번 달 월급 400만원 나가면 3000. 3개월 버틴다. 그 안에 투자 못 받으면 끝이다.
민석이는 매달 월급 들어온다. 12개월 계속. 내년에도. 모레도.
나는 3개월 후를 모른다.
부모님이 걱정하는 게 이해된다. 진짜로.
새벽 2시의 현타
가끔 새벽에 잠 못 잔다.
코딩하다가 멈춘다. 화면 보다가 생각에 빠진다.
“나 뭐하는 거지?”
27살. 4학년 휴학 중. 회사는 1년 반. 수익은 0원. 직원 4명. 런웨이 3개월.
이게 이력서에 뭐라고 쓰이는 거지?
“AI 스타트업 대표 (실패)”?
만약 지금 접으면. 복학하면. 빠르면 내년에 졸업한다. 29살에 신입 지원한다.
“27살에 뭐 했어요?” “창업했습니다. 실패했고요.” “배운 게 있다면?” ”…돈 관리?”
면접관이 고개 끄덕일까?
민석이는 지금 경력 쌓는다. 1년 후면 경력 1년차다. 나는? 1년 후에도 “전 창업 준비 중입니다” 할 수도 있다.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도박하는 거다. 확률 낮은 복권 긁고 있는 거다.
“그냥 졸업하고 취업해라. 안정적으로 살아라.”
틀린 말이 아니다.

성공하면 다 괜찮을 거라는 착각
근데 나는 계속한다.
왜? 성공할 것 같아서? 아니다. 확신 없다.
그냥… 성공하면 다 괜찮을 것 같아서.
성공하면 엄마가 이해할 거다. “그래 네가 옳았구나” 할 거다. 졸업 안 한 것도, 전화 안 받은 것도, 다 이해될 거다.
“우리 아들 회사 대표야. 직원 50명이야. 투자 50억 받았어.”
이 말 한 번 하면. 그동안의 불안이 다 정당화될 거다.
근데 그게 착각인 걸 안다.
성공은 확률이다. 노력한다고 다 성공하는 게 아니다. 스타트업 10개 중 9개는 망한다. 나도 알고, 부모님도 알고, 다 안다.
근데 나는 “우리는 그 1개다” 라고 믿는다.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못 한다.
부모님은 “9개 중 하나면 어쩔래” 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부모니까.
이 간극을 메울 방법이 없다. 말로 설득할 수 없다. 그냥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전화를 안 받는다. 보여줄 게 없는데 뭘 말해. “아직이에요” 만 반복할 건데 왜 통화해.
아빠의 한마디
작년에 집에 갔을 때다. 추석.
아빠랑 둘이 산책했다. 동네 뒷산. 아빠가 말했다.
“너 하고 싶은 거 해라. 근데 졸업은 해라.”
“왜요? 졸업장이 뭐가 중요한데요.”
“보험이다.”
“보험이요?”
“실패해도 졸업장은 있어야지. 그게 너를 지켜준다.”
그때는 반발했다. “전 안 망해요”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근데 요즘은 그 말이 자꾸 생각난다.
망하면 어쩌지? 29살에 학교 돌아가서 졸업하고 30살에 신입 지원하면? 동기들은 그때 대리고 과장이고 할 텐데?
아빠 말이 맞는 걸까?
근데 지금 복학하면 회사는? 팀원들은? 여기까지 온 1년 반은?
답이 없다.
엄마의 카톡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아들 요즘 바쁘지? 밥 잘 먹고 다녀라. 사랑한다.”
읽고 답장 안 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네 잘 먹어요” 하면 거짓말 같고.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요” 하면 무거워지고.
“저도 사랑해요” 하면… 눈물 날 것 같고.
그냥 안 읽은 척하고 싶었다. 근데 카톡은 읽음 표시가 뜬다.
저녁에 다시 문자가 왔다.
“통화 가능? 5분만”
또 안 받았다.
미안하다. 진짜로. 근데 지금은 통화할 수 없다. 보여줄 게 없어서. 들려줄 좋은 소식이 없어서.
“다음 달에 투자 받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면 “그래 잘됐다 근데 졸업은?” 이 나올까 봐.
언젠가는
언젠가는 전화받을 거다.
좋은 소식 있을 때. 투자 받았을 때. 매출 나왔을 때. 기사 났을 때.
“엄마 저 000 투자 받았어요. 10억.”
“와 진짜? 우리 아들 대단하다.”
“이제 괜찮을 것 같아요. 회사도 안정됐고.”
“그래 다행이다. 근데 아들아.”
“응?”
“졸업은?”
또 그 질문이 나올 거다. 아마도.
근데 그때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졸업보다 더 큰 거 해냈잖아요.”
엄마가 이해할까? 모르겠다.
근데 적어도 떳떳하게 말할 수는 있을 거다.
그때까지는 전화를 피할 거다. 미안하지만.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3개월. 다음 투자 유치까지.
그 후에 다시 생각한다. 졸업? 복학? 그건 그때 가서.
지금은 일단 버티는 거다.
통화 거부 21회. 오늘도 하나 추가됐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근데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미안해 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