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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전화는 왜 자꾸 피하게 될까

부모님 전화는 왜 자꾸 피하게 될까

부모님 전화는 왜 자꾸 피하게 될까 통화 거부 21회 엄마 전화가 또 왔다. 화요일 저녁 8시. 이번 주만 세 번째다. "나중에 할게요" 문자 보내고 거절 버튼을 눌렀다. 스물한 번째다. 지난달부터 세고 있다. 왜 세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숫자로 만들면 덜 미안할 것 같아서. 팀원들이랑 회의 중이었다는 핑계를 댔다. 실제로는 카페에서 혼자 틱톡 보고 있었다. 경쟁사 분석이라고 하면 일인데, 사실 그냥 보고 있었던 거다. 전화를 안 받는 이유를 안다. 통화하면 딱 세 가지가 나온다. "밥은 먹냐" "돈은 있냐" "졸업은 언제 하냐" 처음 두 개는 대충 넘어간다. "네 먹어요", "있어요" 하면 끝이다. 근데 마지막 질문. 이게 문제다.졸업이라는 단어 "졸업은 언제 하냐" 이 질문 앞에서 나는 27살이 아니라 중학생이 된다. 숙제 안 한 거 들킨 중학생. 학원 빠진 고딩. 용돈 다 쓴 대학생. 그 시절로 돌아간다. 목소리도 작아진다. "아... 그게... 다음 학기에..." 거짓말이다. 다음 학기에 복학할 생각 없다. 지금 복학하면 회사 접어야 한다. 매일 수업 들으면서 개발하고 투자 미팅 돌 수 없다. 근데 그걸 어떻게 말해. "엄마 나 학교 안 다닐 거 같아. 회사가 잘 될 것 같거든." 이렇게? 지난번에 한 번 말했다. 작년 설날에. "저 복학 좀 늦출게요. 회사가 지금 중요한 시기라..." 아빠가 끊었다. "중요한 시기가 언제 안 중요하냐. 졸업장 없으면 나중에 후회한다." 그 후로 안 꺼낸다. 엄마는 가끔 물어본다. 나는 "다음 학기요" 만 반복한다. 거짓말이 쌓인다. 통화할 때마다 쌓인다. 그래서 전화를 안 받는다. 5000만원의 무게 엔젤 투자 5000만원 받았을 때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투자 받았어. 5000만원." "우와 대단하다. 근데 그게 뭐냐?" 설명했다. 회사 지분 15% 주고 받는 돈이라고. 이걸로 1년은 버틸 수 있다고. 팀원들 월급도 주고 마케팅도 하고. "그래 잘됐다. 근데 졸업은 하고 하는 거지?" 또 졸업이다. 그때 깨달았다. 엄마한테 5000만원은 그냥 숫자다. 투자도, 지분도, 런웨이도 다 외계어다. 그냥 "우리 아들이 뭔가 하고 있구나" 정도. 진짜 중요한 건 졸업장이다. 눈에 보이는 거. 액자에 걸 수 있는 거. 친척들한테 자랑할 수 있는 거. "조카 대학 졸업했어요. 좋은 데 취업했고요." 이게 엄마가 원하는 문장이다. "조카 회사 차렸어요. 투자 받았고요." 이건 불안한 문장이다. 불안한 자랑이다.동기들의 인스타 어제 대학 동기 인스타를 봤다. 민석이. 입사 인증샷이었다. 네이버 사옥 앞에서. 정장 입고. 사원증 목에 걸고. "드디어 사회인 1일차 :)" 좋아요 342개. 댓글 67개. "축하해!" "부럽다ㅠㅠ" "네이버 대박" "민석아 저녁 쏴" 스크롤 내렸다. 지훈이도. 삼성전자. 수빈이도. 카카오. 다들 입사했다. 졸업하고 취업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루트를 탔다. 나도 댓글 달았다. "ㅊㅋㅊㅋ" 하트 이모티콘 세 개. 근데 속으로 계산했다. 민석이 연봉 5500만원쯤 될 거다. 네이버 신입이면. 지훈이는 6000 넘을 수도. 나는? 우리 회사 통장에 3400만원 남았다. 이번 달 월급 400만원 나가면 3000. 3개월 버틴다. 그 안에 투자 못 받으면 끝이다. 민석이는 매달 월급 들어온다. 12개월 계속. 내년에도. 모레도. 나는 3개월 후를 모른다. 부모님이 걱정하는 게 이해된다. 진짜로. 새벽 2시의 현타 가끔 새벽에 잠 못 잔다. 코딩하다가 멈춘다. 화면 보다가 생각에 빠진다. "나 뭐하는 거지?" 27살. 4학년 휴학 중. 회사는 1년 반. 수익은 0원. 직원 4명. 런웨이 3개월. 이게 이력서에 뭐라고 쓰이는 거지? "AI 스타트업 대표 (실패)"? 만약 지금 접으면. 복학하면. 빠르면 내년에 졸업한다. 29살에 신입 지원한다. "27살에 뭐 했어요?" "창업했습니다. 실패했고요." "배운 게 있다면?" "...돈 관리?" 면접관이 고개 끄덕일까? 민석이는 지금 경력 쌓는다. 1년 후면 경력 1년차다. 나는? 1년 후에도 "전 창업 준비 중입니다" 할 수도 있다.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도박하는 거다. 확률 낮은 복권 긁고 있는 거다. "그냥 졸업하고 취업해라. 안정적으로 살아라." 틀린 말이 아니다.성공하면 다 괜찮을 거라는 착각 근데 나는 계속한다. 왜? 성공할 것 같아서? 아니다. 확신 없다. 그냥... 성공하면 다 괜찮을 것 같아서. 성공하면 엄마가 이해할 거다. "그래 네가 옳았구나" 할 거다. 졸업 안 한 것도, 전화 안 받은 것도, 다 이해될 거다. "우리 아들 회사 대표야. 직원 50명이야. 투자 50억 받았어." 이 말 한 번 하면. 그동안의 불안이 다 정당화될 거다. 근데 그게 착각인 걸 안다. 성공은 확률이다. 노력한다고 다 성공하는 게 아니다. 스타트업 10개 중 9개는 망한다. 나도 알고, 부모님도 알고, 다 안다. 근데 나는 "우리는 그 1개다" 라고 믿는다.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못 한다. 부모님은 "9개 중 하나면 어쩔래" 라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부모니까. 이 간극을 메울 방법이 없다. 말로 설득할 수 없다. 그냥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전화를 안 받는다. 보여줄 게 없는데 뭘 말해. "아직이에요" 만 반복할 건데 왜 통화해. 아빠의 한마디 작년에 집에 갔을 때다. 추석. 아빠랑 둘이 산책했다. 동네 뒷산. 아빠가 말했다. "너 하고 싶은 거 해라. 근데 졸업은 해라." "왜요? 졸업장이 뭐가 중요한데요." "보험이다." "보험이요?" "실패해도 졸업장은 있어야지. 그게 너를 지켜준다." 그때는 반발했다. "전 안 망해요"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근데 요즘은 그 말이 자꾸 생각난다. 망하면 어쩌지? 29살에 학교 돌아가서 졸업하고 30살에 신입 지원하면? 동기들은 그때 대리고 과장이고 할 텐데? 아빠 말이 맞는 걸까? 근데 지금 복학하면 회사는? 팀원들은? 여기까지 온 1년 반은? 답이 없다. 엄마의 카톡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아들 요즘 바쁘지? 밥 잘 먹고 다녀라. 사랑한다." 읽고 답장 안 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네 잘 먹어요" 하면 거짓말 같고.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요" 하면 무거워지고. "저도 사랑해요" 하면... 눈물 날 것 같고. 그냥 안 읽은 척하고 싶었다. 근데 카톡은 읽음 표시가 뜬다. 저녁에 다시 문자가 왔다. "통화 가능? 5분만" 또 안 받았다. 미안하다. 진짜로. 근데 지금은 통화할 수 없다. 보여줄 게 없어서. 들려줄 좋은 소식이 없어서. "다음 달에 투자 받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면 "그래 잘됐다 근데 졸업은?" 이 나올까 봐. 언젠가는 언젠가는 전화받을 거다. 좋은 소식 있을 때. 투자 받았을 때. 매출 나왔을 때. 기사 났을 때. "엄마 저 000 투자 받았어요. 10억." "와 진짜? 우리 아들 대단하다." "이제 괜찮을 것 같아요. 회사도 안정됐고." "그래 다행이다. 근데 아들아." "응?" "졸업은?" 또 그 질문이 나올 거다. 아마도. 근데 그때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졸업보다 더 큰 거 해냈잖아요." 엄마가 이해할까? 모르겠다. 근데 적어도 떳떳하게 말할 수는 있을 거다. 그때까지는 전화를 피할 거다. 미안하지만.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3개월. 다음 투자 유치까지. 그 후에 다시 생각한다. 졸업? 복학? 그건 그때 가서. 지금은 일단 버티는 거다.통화 거부 21회. 오늘도 하나 추가됐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근데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미안해 엄마.

틱톡을 '트렌드 분석'이라고 부르는 순간

틱톡을 '트렌드 분석'이라고 부르는 순간

틱톡을 '트렌드 분석'이라고 부르는 순간 11시 39분, 노션 켜놓고 노션 창 3개 띄워놨다. 피그마도 켰다. 그 상태로 틱톡 보는 중. "트렌드 파악하는 거야." 혼잣말이다. 믿진 않는다. 숏폼 20개째. 스크롤이 자동이다.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인다. 킥킥 웃으면서 보다가, 문득 멈춘다. '이거... 일하는 건가?'창업하고 이 질문 진짜 많이 한다. 일과 딴짓의 경계. 특히 밤에. 낮에는 괜찮다. 카페에서 맥북 펴고 있으면 일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실제로 코드도 짠다. 미팅도 한다. 근데 밤 11시, 침대에 누워서. 틱톡 보면서 '트렌드 분석'이라고 우기는 순간. 이건 뭐냐. 솔직히 모르겠다. 합리화의 단계 1단계: "우리 타겟층이 Z세대잖아." 맞는 말이다. 서비스 쓰는 애들 90%가 10대 후반~20대 초반. 틱톡 안 보면 어떻게 알아. 2단계: "요즘 트렌드 안 보면 뒤처져." 이것도 맞다. 숏폼 편집 툴 만드는데 숏폼을 안 보면 안 된다. 당연하다. 3단계: "레퍼런스 모으는 거야." 노션에 '트렌드 분석' 페이지도 있다. 가끔 URL 저장한다. 진짜로. 4단계: "..." 더 이상 할 말 없음. 그냥 재밌어서 보는 거다.새벽 2시까지 본 적 있다. 200개 넘게. 레퍼런스는 3개 저장했다. 효율 1.5%. 근데 그 3개가 다음 날 기획 회의에서 쓰였다. "이런 전환 효과 어때요?" 그래서 또 헷갈린다. 진짜 일 vs 가짜 일 팀원들이랑 이 얘기 한 적 있다. 치킨 먹으면서. "형 틱톡 보는 거 일이에요 딴짓이에요?" CTO 재민이가 물었다. 걔도 똑같이 한다. "일이지. 트렌드 파악." "근데 3시간씩 봐요?" "...그건 좀 많긴 하다." 다들 웃었다. 우리 다 똑같다. 인스타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핑퐁한다. '경쟁사 분석'이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킥킥거리면서 본다. 근데 가끔, 진짜로 일이 되는 순간이 있다. "어? 이 트랜지션 미쳤는데?" 하면서 스크린샷 찍는다. 슬랙에 공유한다. "이거 구현 가능해?" 그게 진짜 기능이 된다. 그러니까. 100개 보면 1개가 일이다. 나머지 99개는 딴짓이다. 근데 그 1개 때문에 100개를 봐야 한다고 우긴다. 수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 투자자 앞에서 VC 미팅 갔다. 지난주. "요즘 Z세대 트렌드를 어떻게 캐치하세요?" 질문 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매일 틱톡, 인스타 릴스 보면서 분석합니다. 저도 타겟층이니까요." 자신감 있게.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음... 2-3시간?" 실제로는 5시간이다. 반으로 줄여 말했다.투자자 표정이 미묘했다. '그게 일이야?' 같은 느낌. "효율적인 방법 같네요." 말은 그렇게 했다. 믿는 것 같진 않았다. 투자는 안 됐다. 3주 뒤 거절 메일 왔다. "팀 구성은 좋으나 트랙션이 부족" 틱톡 때문은 아니다. 근데 좀 찔렸다. 부모님 전화 왔을 때 "준아, 요즘 뭐 해?" "일 열심히 하고 있어요." "힘들지?" "괜찮아요." 거짓말은 아니다. 일은 한다. 근데 그 순간 폰에 틱톡 켜져 있었다. 화면에는 고양이 영상. 통화 끝나고 씁쓸했다. '나 진짜 뭐하는 거지?' 부모님은 내가 맥북 앞에서 밤새 코딩하는 줄 안다. 실제로는... 반반이다. 코딩 반, 틱톡 반. 그렇게 말하면 실망하실까 봐 못 한다. 동기 취업한 날 고등학교 동기 인스타 스토리. "네X버 입사했습니다 🎉" 축하 DM 보냈다. "ㅊㅋㅊㅋ 대박" 근데 기분이 묘했다. 걔는 출근한다. 9시에 일어나서, 사무실 간다. 칼퇴한다. 월급 받는다. 나는? 오후 1시에 일어나서, 카페 간다. 맥북 켜고 틱톡 본다. '트렌드 분석'이라고 한다. 누가 더 일하는 거지? 연봉 4천만원. 걔네 초봉이다. 나는 월급도 없다. 투자금으로 버틴다. '난 창업가야. 다르지.' 되뇌었다. 확신은 없었다. 그날 밤, 틱톡 3시간 봤다. 레퍼런스는 1개 저장했다. 진짜 질문 틱톡을 보는 게 일인가? 대답하기 어렵다. 개발자가 유튜브 보면서 튜토리얼 찾는 건 일이다. 당연하다. 기획자가 경쟁사 앱 써보는 것도 일이다. 맞다. 그럼 숏폼 편집 툴 만드는 대표가 숏폼 보는 건? 논리적으로는 일이다. 근데 감정적으로는 딴짓 같다. 특히 30개째 고양이 영상 볼 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일이 아니다. 기준을 만들어봤다 고민 끝에 규칙 정했다.10개 보면 1개는 스크린샷 찍기 30분에 한 번은 노션에 메모하기 새벽 2시 넘으면 끄기3번을 못 지킨다. 어제도 4시까지 봤다. 1번도 잘 안 된다. 재밌는 건 저장만 하고 분석은 안 한다. 2번은... 가끔 한다. "요즘 ~~~ 트렌드" 이런 식으로. 그리고 다시 본다. 규칙이 의미 없다. 나를 못 속인다. 솔직하게 틱톡 보는 거, 80%는 딴짓이다. 인정한다. 근데 그 20%가 진짜로 도움이 된다. 아이디어도 나오고, 트렌드도 잡힌다. 문제는 20% 찾으려고 100% 시간 쓴다는 거. 비효율적이다. 안다. 근데 어쩌겠어. 나도 20대다. 재밌다. 보고 싶다. '일'이라고 포장하면 죄책감이 덜하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부른다. 팀원들한테는 "야, 틱톡 너무 많이 보지 마." 회의 때 말했다. "형도 보잖아요." 재민이가 태클. "나는 일로 보는 거야." "저희도요." 다들 웃었다. 우리 다 안다. 서로 거짓말하는 거. 근데 뭐, 괜찮다. 우리 모두 20대고, 숏폼 만드는 회사다. 틱톡 안 보고 어떻게 만들어. 결론은 없다 틱톡이 일인지 딴짓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인 것 같다. 비율이 문제다. 2:8이면 딴짓이다. 8:2면 일이다. 나는 지금 3:7 정도? 아니, 솔직히 2:8. 개선하고 싶다. 근데 안 된다. 내일도 틱톡 볼 거다. '트렌드 분석'이라고 부르면서.창업가의 자기기만. 오늘도 레벨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