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톡을 '트렌드 분석'이라고 부르는 순간

틱톡을 '트렌드 분석'이라고 부르는 순간

틱톡을 ‘트렌드 분석’이라고 부르는 순간

11시 39분, 노션 켜놓고

노션 창 3개 띄워놨다. 피그마도 켰다. 그 상태로 틱톡 보는 중.

“트렌드 파악하는 거야.”

혼잣말이다. 믿진 않는다.

숏폼 20개째. 스크롤이 자동이다.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인다. 킥킥 웃으면서 보다가, 문득 멈춘다.

‘이거… 일하는 건가?’

창업하고 이 질문 진짜 많이 한다. 일과 딴짓의 경계. 특히 밤에.

낮에는 괜찮다. 카페에서 맥북 펴고 있으면 일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실제로 코드도 짠다. 미팅도 한다.

근데 밤 11시, 침대에 누워서. 틱톡 보면서 ‘트렌드 분석’이라고 우기는 순간. 이건 뭐냐.

솔직히 모르겠다.

합리화의 단계

1단계: “우리 타겟층이 Z세대잖아.” 맞는 말이다. 서비스 쓰는 애들 90%가 10대 후반~20대 초반. 틱톡 안 보면 어떻게 알아.

2단계: “요즘 트렌드 안 보면 뒤처져.” 이것도 맞다. 숏폼 편집 툴 만드는데 숏폼을 안 보면 안 된다. 당연하다.

3단계: “레퍼런스 모으는 거야.” 노션에 ‘트렌드 분석’ 페이지도 있다. 가끔 URL 저장한다. 진짜로.

4단계: ”…” 더 이상 할 말 없음. 그냥 재밌어서 보는 거다.

새벽 2시까지 본 적 있다. 200개 넘게. 레퍼런스는 3개 저장했다.

효율 1.5%.

근데 그 3개가 다음 날 기획 회의에서 쓰였다. “이런 전환 효과 어때요?” 그래서 또 헷갈린다.

진짜 일 vs 가짜 일

팀원들이랑 이 얘기 한 적 있다. 치킨 먹으면서.

“형 틱톡 보는 거 일이에요 딴짓이에요?”

CTO 재민이가 물었다. 걔도 똑같이 한다.

“일이지. 트렌드 파악.”

“근데 3시간씩 봐요?”

”…그건 좀 많긴 하다.”

다들 웃었다. 우리 다 똑같다. 인스타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핑퐁한다.

‘경쟁사 분석’이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킥킥거리면서 본다.

근데 가끔, 진짜로 일이 되는 순간이 있다. “어? 이 트랜지션 미쳤는데?” 하면서 스크린샷 찍는다. 슬랙에 공유한다. “이거 구현 가능해?”

그게 진짜 기능이 된다.

그러니까. 100개 보면 1개가 일이다. 나머지 99개는 딴짓이다. 근데 그 1개 때문에 100개를 봐야 한다고 우긴다.

수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

투자자 앞에서

VC 미팅 갔다. 지난주.

“요즘 Z세대 트렌드를 어떻게 캐치하세요?”

질문 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매일 틱톡, 인스타 릴스 보면서 분석합니다. 저도 타겟층이니까요.”

자신감 있게.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음… 2-3시간?”

실제로는 5시간이다. 반으로 줄여 말했다.

투자자 표정이 미묘했다. ‘그게 일이야?’ 같은 느낌.

“효율적인 방법 같네요.”

말은 그렇게 했다. 믿는 것 같진 않았다.

투자는 안 됐다. 3주 뒤 거절 메일 왔다. “팀 구성은 좋으나 트랙션이 부족”

틱톡 때문은 아니다. 근데 좀 찔렸다.

부모님 전화 왔을 때

“준아, 요즘 뭐 해?”

“일 열심히 하고 있어요.”

“힘들지?”

“괜찮아요.”

거짓말은 아니다. 일은 한다. 근데 그 순간 폰에 틱톡 켜져 있었다.

화면에는 고양이 영상.

통화 끝나고 씁쓸했다. ‘나 진짜 뭐하는 거지?’

부모님은 내가 맥북 앞에서 밤새 코딩하는 줄 안다. 실제로는… 반반이다. 코딩 반, 틱톡 반.

그렇게 말하면 실망하실까 봐 못 한다.

동기 취업한 날

고등학교 동기 인스타 스토리.

“네X버 입사했습니다 🎉”

축하 DM 보냈다. “ㅊㅋㅊㅋ 대박”

근데 기분이 묘했다. 걔는 출근한다. 9시에 일어나서, 사무실 간다. 칼퇴한다. 월급 받는다.

나는? 오후 1시에 일어나서, 카페 간다. 맥북 켜고 틱톡 본다. ‘트렌드 분석’이라고 한다.

누가 더 일하는 거지?

연봉 4천만원. 걔네 초봉이다. 나는 월급도 없다. 투자금으로 버틴다.

‘난 창업가야. 다르지.’

되뇌었다. 확신은 없었다.

그날 밤, 틱톡 3시간 봤다. 레퍼런스는 1개 저장했다.

진짜 질문

틱톡을 보는 게 일인가?

대답하기 어렵다.

개발자가 유튜브 보면서 튜토리얼 찾는 건 일이다. 당연하다.

기획자가 경쟁사 앱 써보는 것도 일이다. 맞다.

그럼 숏폼 편집 툴 만드는 대표가 숏폼 보는 건?

논리적으로는 일이다. 근데 감정적으로는 딴짓 같다.

특히 30개째 고양이 영상 볼 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일이 아니다.

기준을 만들어봤다

고민 끝에 규칙 정했다.

  1. 10개 보면 1개는 스크린샷 찍기
  2. 30분에 한 번은 노션에 메모하기
  3. 새벽 2시 넘으면 끄기

3번을 못 지킨다. 어제도 4시까지 봤다.

1번도 잘 안 된다. 재밌는 건 저장만 하고 분석은 안 한다.

2번은… 가끔 한다. “요즘 ~~~ 트렌드” 이런 식으로. 그리고 다시 본다.

규칙이 의미 없다. 나를 못 속인다.

솔직하게

틱톡 보는 거, 80%는 딴짓이다.

인정한다.

근데 그 20%가 진짜로 도움이 된다. 아이디어도 나오고, 트렌드도 잡힌다.

문제는 20% 찾으려고 100% 시간 쓴다는 거.

비효율적이다. 안다.

근데 어쩌겠어. 나도 20대다. 재밌다. 보고 싶다.

‘일’이라고 포장하면 죄책감이 덜하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부른다.

팀원들한테는

“야, 틱톡 너무 많이 보지 마.”

회의 때 말했다.

“형도 보잖아요.”

재민이가 태클.

“나는 일로 보는 거야.”

“저희도요.”

다들 웃었다. 우리 다 안다. 서로 거짓말하는 거.

근데 뭐, 괜찮다. 우리 모두 20대고, 숏폼 만드는 회사다.

틱톡 안 보고 어떻게 만들어.

결론은 없다

틱톡이 일인지 딴짓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인 것 같다.

비율이 문제다. 2:8이면 딴짓이다. 8:2면 일이다.

나는 지금 3:7 정도? 아니, 솔직히 2:8.

개선하고 싶다. 근데 안 된다.

내일도 틱톡 볼 거다. ‘트렌드 분석’이라고 부르면서.


창업가의 자기기만. 오늘도 레벨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