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지 않은 마음
- 23 Dec, 2025
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지 않은 마음
런웨이 4개월
통장 잔고 확인했다. 회사 계좌 3800만원. 직원 4명 월급 각 100만원. 사무실비 없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4개월이면 끝이다.

투자 미팅 잡혔다. 다음 주 화요일. 시리즈 A까지는 아니고 브릿지 투자. 5000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다. 투자자는 50대 남성. 지난번 미팅 때 “아직 어리시네요” 했던 그 사람이다.
피칭 자료 다시 고쳤다. 트랙션 강조. MAU 2만, MoM 25% 성장. 숫자로만 보면 나쁘지 않다. 근데 수익은 아직이다. 그게 문제다.
팀원들은 모른다. 런웨이 애기. 나만 안다. 대표니까. 26살 대표.
부모님 통화
어제 엄마한테 전화 왔다. 한 달 만이다. “밥은 먹냐” “학교는 언제 가냐” 똑같은 질문이다.
“창업 잘 되냐” 물어봤다. “네, 잘 돼요” 했다. 거짓말이다. 잘 되는 건 아니다. 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버티는 중이다.

“돈은 있냐” 이 질문이 제일 무섭다. “네, 있어요” 했다. 또 거짓말이다. 개인 통장은 180만원이다. 이번 달 카드값 나가면 50만원 남는다.
부모님은 대전에 산다. 아버지는 공무원 퇴직하셨다. 연금 나온다. 200만원 정도. 어머니는 파트타임으로 일하신다. 한 달에 80만원 정도 버신다.
그 돈으로 두 분이 사신다. 여유 없다. 나도 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말했다. “힘들면 얘기해” “돈은 걱정 마” 그 말에 가슴이 아팠다.
동기들 인스타
오늘 대학 동기 인스타 봤다. 김민수. 쟤 네이버 입사했다. 초봉 5500만원이다. 사진에는 신입 명찰이랑 환영 화환이 있었다.
댓글 50개 넘게 달렸다. “축하해” “부럽다” “회식 쏴라” 나도 축하 이모지 눌렀다. 진심이다. 근데 복잡하다.

쟤는 이제 매달 월급 450만원 받는다. 세금 떼면 350만원? 나는 회사 돈에서 내 월급 안 뺀다. 팀원들 주기도 빠듯하다.
쟤는 점심 회사 구내식당에서 먹는다. 저녁도 야근하면 나온다. 나는 편의점 도시락이다. 2500원짜리로 두 끼 때운다.
쟤는 주말에 쉰다. 나는 주말이 없다. 토요일도 코딩한다. 일요일도 데이터 본다. 쟤는 연차 15일이다. 나는 연차 개념이 없다.
부럽나? 모르겠다. 솔직히 조금 부럽다. 아니 많이 부럽다.
만약 투자 안 되면
시뮬레이션 돌려봤다. 투자 안 되면 어떻게 되나.
4개월 후 통장 바닥난다. 팀원들 월급 못 준다. 두 명은 자를 수밖에 없다. 개발자 1명, 디자이너 1명만 남긴다. 월급도 50만원으로 줄인다.
그렇게 해도 2개월이다. 그 다음은?
서비스 접는다. 회사 정리한다. 나는 복학한다. 25학번 1학기. 27살에 졸업이다. 취업 준비한다. 28살에 입사한다. 동기들보다 3년 늦는다.
아니면.
부모님한테 손 벌린다. 5000만원만 빌린다. 아니 3000만원만. 아니 1000만원만이라도.
그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힌다.
지난번 명절
설날 때 집에 갔었다. 작년 2월이다. 창업한 지 8개월 됐을 때다.
친척들이 모였다. 큰아버지가 물어봤다. “창업했다며? 돈 벌어?” 대답 못 했다. 아버지가 대신 말했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
작은아버지가 웃었다. “요즘 애들 다 창업한다더라” “근데 성공하는 애들은 몇 명 안 되지” 술 취한 목소리였다.
어머니 표정이 굳었다. 나는 화장실 갔다. 10분 있다가 나왔다.
저녁 먹고 아버지랑 산책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힘들면 그만둬도 돼” “학교 마치고 취업해도 늦지 않아”
“아니에요” 했다. “조금만 더 해볼게요”
아버지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게 더 미안했다.
팀원들 월급날
매달 25일이 월급날이다. 100만원씩 보낸다. 송금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김준호. 개발자. 같은 과 동기다. 쟤도 휴학 중이다. 부모님이 사업하신다. 여유 있는 집이다. 100만원 받아도 용돈 수준이다. 근데 매달 고맙다고 한다.
박서연. 디자이너. 동아리 후배다. 24살이다. 집은 서울이다. 부모님이 맞벌이하신다. 쟤는 이 100만원으로 산다. 교통비, 식비, 통신비 다 여기서 나간다.
이재훈. 기획자. 학교 선배다. 28살이다. 전 직장 다니다가 왔다. 쟤는 전 직장에서 300만원 받았다. 지금은 100만원이다. 그래도 같이한다. “형 믿고 왔어요” 했다.
최유진. 마케터. 창업 동아리 동기다. 25살이다. 집은 부산이다. 자취한다. 월세 40만원이다. 100만원 받으면 60만원 남는다. 그걸로 산다.
이 사람들 월급 못 주면 어떻게 되나. 생각만 해도 미치겠다.
투자자 미팅 시뮬레이션
다음 주 화요일 준비한다. 피칭 자료 20페이지다. 노션에 정리했다.
예상 질문 리스트 만들었다.
“수익화 계획은?” “경쟁사 대비 차별점은?” “팀 평균 나이가 어리지 않나?” “학교는 안 가나?”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건가?”
답변 준비했다. 외웠다. 거울 보고 연습했다. 표정 관리했다. 목소리 톤 조절했다.
정장 입을까 고민했다. 26살이 정장 입으면 코스프레 같다. 그냥 후드 입고 가기로 했다. 깔끔한 걸로. 검은색.
투자 받아야 한다. 받아야 한다. 받아야만 한다.
부모님한테 손 벌리고 싶지 않다.
아버지 문자
어제 밤 아버지한테 문자 왔다. 새벽 1시였다.
“영준아 자니” “힘들면 얘기해” “아빠가 도와줄게”
읽었다. 답장 못 했다.
아버지는 퇴직금 받았다. 3억 정도 된다고 들었다. 거기서 빚 갚고, 집 고치고, 지금 1억 정도 남았을 거다. 그게 노후 자금이다. 두 분이 20년 쓸 돈이다.
거기 손대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나는 26살이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27살에 복학해도 된다. 28살에 취업해도 된다. 30살에 다시 창업해도 된다.
근데 아버지는 다르다. 64살이다. 실패하면 끝이다. 회복 불가능하다.
내가 편하자고 부모님 노후 자금 쓸 수는 없다.
새벽 3시에 답장 보냈다.
“안 자요 ㅋㅋ 코딩 중”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투자 미팅 있어요 잘 될 거예요”
거짓말은 아니다. 투자 미팅은 있다. 잘 될지는 모른다.
카페에서
지금 카페에 있다. 홍대 어딘가다. 아메리카노 4500원짜리 시켰다. 비싸다. 근데 와이파이 빠르고 콘센트 있다.
옆 테이블에 대학생들 있다. 과제하는 것 같다. “이거 내일까지인데 어떻게 해” “교수님한테 메일 보내볼까” 웃으면서 얘기한다.
저 나이 때가 그리워진다. 걱정이 과제뿐이었던 시절. 학점이 제일 큰 고민이었던 때.
지금은 다르다. 걱정이 생존이다. 고민이 현금흐름이다.
노트북 열었다. 피칭 자료 다시 본다. 숫자 확인한다. 문장 다듬는다.
다음 주 화요일. 5일 남았다.
투자 받으면 된다. 부모님 돈 안 써도 된다. 팀원들 월급 줄 수 있다. 6개월 더 버틸 수 있다.
투자 안 되면? 생각하기 싫다.
아메리카노 마신다. 식었다. 쓰다.
손 벌리는 것보다 무너지는 게 더 무섭다. 근데 손 벌리면 진짜 무너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