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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랙을
- 11 Dec, 2025
노션, 피그마, 슬랙을 다 혼자 세팅하는 대표의 번아웃
다 나였다 노션 세팅을 내가 했다. 피그마 컴포넌트도 내가 만들었다. 슬랙 채널 구조, 봇 연동, 알림 설정. 전부 나. 처음엔 좋았다. 재밌었다. 템플릿 찾아보고, 디자인 시스템 공부하고, 자동화 설정하면서 "우리 회사 워크플로우 개쩐다" 이랬다. 근데 지금은. "대표님 노션에서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슬랙 알림이 너무 많이 와요." "피그마 권한 설정 좀 해주세요." 다 나한테 온다.좋아서 한 거였는데 창업 초기에 툴 세팅은 진짜 재밌었다. 우리만의 시스템 만드는 거.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이 "레거시 시스템 개답답해" 하는 거 보면서 "우린 다르지" 했다. 노션은 3일 밤새서 구조 잡았다. 프로젝트 관리, 회의록, 지식 베이스, 채용 프로세스까지. 템플릿 30개 넘게 만들었다. 피그마는 디자인 시스템부터 시작했다. 컬러, 타이포, 컴포넌트. "나중에 디자이너 뽑으면 바로 쓸 수 있게." 근데 아직도 디자이너 없다. 내가 다 한다. 슬랙은 채널을 카테고리별로 나누고, 깃헙 연동하고, 구글 캘린더 싱크하고. "자동화가 생산성이다" 믿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다 내 목을 조를 줄. 책임이 되어버린 취미 문제는 내가 너무 잘 만들었다는 거다. 팀원들이 의존한다. 뭐 하나 바꾸려고 하면 "혹시 다른 곳에 영향 가는 거 아니에요?" 물어본다. 맞다. 간다.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노션 데이터베이스 하나 수정하면 연동된 다른 페이지 3개가 깨진다. 피그마 컴포넌트 바꾸면 쓰고 있던 화면 20개를 다 체크해야 한다. "대표님이 만드신 거라 잘 모르겠어요." 이 말이 제일 무섭다. 내가 만든 시스템을 나만 알고 있다. 나만 고칠 수 있다. 개발도 해야 하고, 투자 미팅도 가야 하고, 서비스 기획도 해야 하는데. 노션 템플릿 버그 잡고 있다.가르쳐줘도 안 된다 "이거 제가 하겠습니다" 하는 팀원한테 가르쳐줬다. 1시간 걸렸다. 근데 다음날. "대표님 그거 다시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또 30분. 그다음 주. "저번에 알려주신 거랑 좀 다른 건데요." 그냥 내가 하는 게 빠르다. 5분이면 끝난다. 설명하면 30분이다. 그렇게 다 내가 한다. 효율적이니까. 근데 이게 쌓인다. "슬랙 알림 설정 좀 바꿔주세요." "노션에 새 프로젝트 페이지 만들어주세요." "피그마 프로토타입 링크 생성 어떻게 해요?" 하루에 10개씩 온다. 각각 5분이면 50분이다. 매일. 개발할 시간이 없다. 완벽주의의 덫 내가 만든 시스템이 너무 복잡하다. 인정한다. 근데 그때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확장 가능하게", "나중을 위해", "체계적으로". 노션 데이터베이스에 릴레이션 6개 걸려있다. 한 프로젝트 보려면 페이지 3개 넘어가야 한다. 피그마 컴포넌트는 3단계 중첩이다. 버튼 하나 수정하려면 마스터 컴포넌트 찾아 들어가야 한다. 슬랙 자동화는 조건이 너무 많다. "이 채널에 이 키워드가 포함되면, 저 채널에 알림을 보내되, 금요일은 제외." 팀원들이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나도 가끔 헷갈린다.버리지 못하는 이유 왜 안 버리냐고? 아까워서. 3일 밤새서 만든 노션 구조. 디자인 시스템 공부하면서 쌓은 피그마 컴포넌트. 자동화 설정하느라 본 슬랙 문서 200페이지. "나중에 쓸모있을 거야." "회사 커지면 필요해." "지금 버리면 나중에 또 만들어야 해." 근데 나중은 안 온다. 지금만 있다. 팀원이 "이거 너무 복잡한데 간단하게 못 바꾸나요?" 했을 때. 발끈했다. "이게 제일 효율적인 구조야.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근데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이게 정말 필요한 건지. 세팅 장인의 일상 월요일 아침. 아니 오후 1시. 일어나서 노션 본다. 새 프로젝트 생긴 거 확인. 템플릿 복사해서 세팅. 20분. 카페 가서 개발 시작. 슬랙 알림 온다. "대표님 권한 설정 부탁드려요." 5분. 코드 10줄 쓴다. 또 알림. "노션 데이터베이스 연동이 안 돼요." 들어가 본다. 릴레이션 꼬였다. 15분. 점심 먹고 미팅. 투자사한테 "저희 워크플로우는 완전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자랑한다. 뿌듯하다. 미팅 끝나고 노트북 펼친다. 슬랙에 메시지 7개. 전부 "대표님 이거..." 저녁 8시. 개발 시작. 진짜 시작. 새벽 2시. 팀원이 슬랙에 멘션한다. "내일 미팅 자료 피그마에 만들었는데 확인 부탁드려요." 들어가 본다. 컴포넌트를 잘못 썼다. 고쳐야 한다. 안 고치면 다음에도 똑같이 할 거다. 고친다. 30분. 새벽 4시에 잔다. 나만 할 수 있는 일 제일 무서운 건 이거다. "대표님 안 계시면 이거 못 해요." 맞다. 나 없으면 못 한다. 내가 만든 시스템이니까. 휴가? 못 간다. 가도 노트북 들고 간다. 슬랙 알림 온다. "급한데요." 아프면? 그래도 해야 한다. 5분이면 되는 건데 설명하면 30분이다. "버스 팩터 1" 이라는 말 안다. 한 명이 버스에 치이면 프로젝트가 멈춘다는 거. 우리 회사가 그렇다. 내가 버스에 치이면 노션, 피그마, 슬랙 전부 멈춘다. 근데 바꿀 수가 없다. 시간이 없다. 가르칠 시간에 내가 하는 게 빠르다. 악순환이다. 창업자의 저주 선배 창업자한테 푸념했다. "세팅 다 제가 해서 혼자 감당이 안 돼요." "그거 창업자의 저주야. 잘하면 계속 너만 하게 돼." 맞는 말이었다. 나 빼고 다 신입이다. 당연히 나보다 못한다. 근데 그게 문제다. "신입들 실력이 늘 때까지 기다려" 라고 하는데. 그 시간에 나는 번아웃 온다. "체계 문서화해서 인수인계해" 라고 하는데. 문서화할 시간에 그냥 내가 한다. "단순하게 만들어" 라고 하는데. 이미 복잡하다. 갈아엎을 시간 없다. 조언은 다 맞다. 근데 다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없다. 밤의 고백 새벽 3시. 노션 켜놓고 멍 때린다. "이거 왜 만들었지." 처음엔 우리 회사를 위해서였다. 효율적으로 일하려고.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려고. 근데 지금은 이게 날 잡아먹는다. 개발자인데 개발 못 한다. 대표인데 전략 못 짠다. 노션 관리자, 피그마 관리자, 슬랙 관리자가 됐다. 친구가 물어봤다. "요즘 뭐해?" "개발이랑... 세팅 관리?" "세팅 관리가 뭔데." "그냥... 툴 관리." 설명하기도 민망하다. "제품 개발은?" "하긴 하는데..." 사실 개발보다 세팅 관리에 시간 더 쓴다. 내려놓고 싶다 솔직히 다 버리고 싶다. 노션 복잡한 구조 다 지우고 심플하게. 피그마 컴포넌트 절반 삭제. 슬랙 자동화 꺼버리기. "그냥 심플하게 하면 안 돼요?" 팀원이 물었을 때 발끈했는데. 이제 알겠다. 맞는 말이었다. 심플한 게 좋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좋다. 나 없어도 돌아가는 게 좋다. 근데 이미 너무 많이 만들었다. 매몰 비용의 덫. 경영학 수업에서 배웠다. 이미 투입한 게 아까워서 계속 투입한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내가 그렇다. 다음 창업 때는 언젠가 이 회사가 성공하거나 망하거나 한다. 그다음에 또 창업하면. 노션은 심플하게. 템플릿 5개면 충분. 피그마는 기본 컴포넌트만. 나중에 디자이너가 만들게. 슬랙은 채널 10개. 자동화는 필수만. "확장 가능하게" 하지 않는다. "나중을 위해" 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만. 지금 할 수 있는 것만. 완벽한 시스템보다 돌아가는 시스템. 복잡한 구조보다 이해되는 구조. 나만 할 수 있는 것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근데 이건 다음 창업 얘기고. 지금은 어떡하지. 오늘 저녁 회의 "다음 주부터 노션 구조 좀 바꾸려고 해요." 팀원들한테 말했다. "심플하게. 누구나 수정할 수 있게." "지금 거 괜찮은데요?" "아니야. 너무 복잡해. 나도 헷갈려." "그럼 대표님이 바꾸시는 거예요?" "...응." 결국 또 나다. 근데 이번엔 다르게 한다. 팀원들이랑 같이. 천천히. "매주 금요일 1시간씩 같이 정리해요. 각자 담당 정하고." 될까? 모르겠다. 근데 안 하면 나 망한다.노션 탭 17개 켜놓고 뭘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든 미로에 내가 갇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