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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저녁 치맥 회의가 일인지 노는 건지 모르겠어

저녁 치맥 회의가 일인지 노는 건지 모르겠어

저녁 7시, 또 치맥 오늘도 저녁 7시가 됐다. 팀원들한테 단톡 던졌다. "저녁 어디서?" 답은 뻔하다. "치맥?" "굿굿" "ㅇㅋ" 회사 사무실이 없으니까 저녁 회의가 곧 치맥이다. 처음엔 진짜 회의였다. 노트북 펴놓고 피그마 보면서 진지하게 얘기했다. 근데 요즘은 모르겠다. 이게 회의인지 그냥 노는 건지. 홍대 뒷골목 치킨집. 단골이 됐다. 사장님이 알아본다. "사장님들 오셨네요!" 우리는 사장이 한 명인데 사장님들이래. 뭐 다 대표 마인드로 일하긴 한다. 그렇게 세뇌시켰다. 테이블에 앉았다. 치킨 2마리 주문. 맥주 4병. 계산하면 6만원쯤. 런웨이 4개월 남았는데 한 끼에 6만원. 근데 이게 회의니까 괜찮다고 합리화한다.맥주 한 잔 하면서 시작 첫 잔은 진지하다. "오늘 개발 진행 상황 공유할게." 메인 개발자인 내가 말한다. 다들 고개 끄덕인다. 맥주 홀짝이면서 듣는다. "로그인 기능 리팩토링 끝났고, 내일부터 편집 알고리즘 개선 들어간다." "오 좋은데?" "걸리는 시간?" "일주일?" 여기까진 회의다. 분명히 회의다. 디자이너 재민이가 폰 꺼낸다. 피그마 켠다. "이번 온보딩 화면 봐봐." 다들 목 빼고 본다. 치킨 먹으면서. "폰트 좀 키우면?" "색감은 좋은데." "여기 버튼 위치가..." 이것도 회의다. 맥주 마시면서 하는 회의. 마케터 수진이가 끼어든다. "근데 있잖아, 요즘 틱톡 트렌드가..." 여기서부터 애매하다. 이게 트렌드 분석인가? 그냥 숏폼 떠드는 건가? "진짜 요즘 챌린지가 미쳤어." 수진이가 폰 보여준다. 다들 "오" 하면서 본다. 누가 댓글 읽는다. 웃는다. 맥주 한 병씩 비웠다. 치킨 한 마리 반 먹었다.두 번째 잔부터 흐려진다 "한 잔 더?" "당연하지." 두 번째 맥주 따른다. 여기서부터 경계가 흐려진다. 회의인지 술자리인지. "근데 우리 서비스 진짜 되는 거 맞아?" 막내 동현이가 갑자기 던진다. 무거워진다. 다들 치킨만 씹는다. "되게 해야지 뭐." 내가 대답한다. 대표니까. "투자 더 받으면 되지." 근데 내 목소리가 확신 없이 들린다. "근데 형, 요즘 투자 분위기 안 좋잖아." 재민이가 말한다. "맞아, 우리 지난번 IR 피칭 갔을 때도..." 수진이가 거든다. 이건 회의다. 분명히 회의다. 회사 미래 얘기하잖아. 근데 맥주 마시면서 하는 게 맞나? "에이 씨, 너무 무겁게 가지 말자." 내가 분위기 바꾼다. "일단 서비스 개선 열심히 하고, 다음 달에 VC 한 군데 더 컨택하면 돼." "그래그래, 우리 서비스 개쩌는데." 동현이가 맞장구친다. "MAU 2만 넘었잖아." "수익화만 되면 장땡이지." 낙관론으로 바뀐다. 맥주가 그렇게 만든다. 술김에 다 잘될 것 같다. 근데 내일 아침 되면 또 불안하다는 거 안다. 치킨 두 마리 다 먹었다. 맥주 3병째. 세 번째 잔은 그냥 수다 "사장님, 맥주 4병 더요!" 누가 외쳤는지 모르겠다. 다들 취했다. 나도 취했다. "야 근데 있잖아, 저번에 투자자 미팅 때..." 재민이가 웃으면서 말한다. "형이 긴장해서 물 세 번 마셨어 ㅋㅋㅋ" "닥쳐 ㅋㅋㅋㅋ" 내가 웃으면서 받아친다. "너도 피그마 발표할 때 떨었잖아." "그건 레이저 포인터가 고장 나서..." "핑계 ㅋㅋㅋ" 다들 깔깔댄다. 이건 회의 아니다. 그냥 술자리다. 친구들이랑 마시는 거랑 똑같다. 근데 우리는 친구가 맞긴 하다. 창업 전부터 알던 사이. 같은 과, 같은 동아리. 대표와 직원이기 전에 친구다. "야 동현아, 너 여자친구는 어떻게 됐어?" 수진이가 묻는다. "에이, 그거..." 동현이가 얼굴 붉힌다. 연애 얘기 나온다. 회사랑 1도 상관없는 얘기. 근데 다들 진지하게 조언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카톡은 이렇게 보내야 돼." 30분 흘렀다. 회사 얘기 하나도 안 나왔다. 맥주만 비웠다.계산하면서 드는 생각 11시 넘었다. 슬슬 일어날 시간이다. "계산할게요!" 사장님한테 말한다. 카드 긋는다. 법인카드. 영수증 본다. 82,000원. 치킨 2마리, 맥주 8병, 소주 2병 (언제 시켰지?), 감자튀김. 8만원. 팀원 한 명 하루 인건비다. 우리는 월급을 일당으로 환산하면 33,000원씩 받는다. 오늘 회의비로 2.5일 치 월급 쓴 거다. 근데 이게 회의 맞나? 진짜 회의였던 시간은 처음 30분. 개발 진행 상황, 디자인 피드백. 그다음 30분은 애매하다. 회사 고민 얘기했으니 반은 회의? 마지막 3시간은 그냥 술자리. 밖에 나왔다. 밤바람 분다. 취기가 깬다. 팀원들이 재잘거린다. "오늘 회의 알차게 했다!" "ㅇㅈ ㅇㅈ" 나만 생각한다. '회의였나?' 회의인지 노는 건지 숙소 들어왔다. (원룸이지만 숙소라고 부른다. 더 프로 같아서.) 노트북 켠다. 술 깨려고 물 마신다. 오늘 회의록 쓴다. 항상 쓴다. 회의 후엔 노션에 정리한다. 근데 오늘은 쓸게 별로 없다. "로그인 리팩토링 완료", "온보딩 화면 수정안 검토", "다음 주 VC 미팅 준비". 끝. 4시간 동안 이것만? 8만원 내고 이것만? 스타트업 블로그 들어간다. 다른 창업자들 글 본다. "효율적인 회의 문화", "스타트업의 소통 방식", "린한 조직 운영". 다들 멋있게 쓴다. 데일리 스탠드업 15분, 위클리 회고 1시간, 명확한 아젠다와 액션 아이템. 우리는? 치맥 4시간, 아젠다 없음, 액션 아이템 애매함. 근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친구다. 대학 동기들이 모여서 창업했다. 회사 만들기 전부터 같이 술 마셨다. 회사 만들었다고 갑자기 딱딱하게 회의할 수 있나? "안건 1번", "안건 2번" 이러면서? 우리 나이 평균 25살인데? 근데 또 생각한다. 우리는 회사다. 투자 받았다. 책임이 있다. 망하면 안 된다. 친구처럼 편하게 일하는 게 좋은 건가? 아니면 제대로 된 조직처럼 굴러가야 하나? 답 모르겠다. 다른 팀들은 어떨까 인스타 들어간다. 창업자 팔로우 많이 해놨다. 다들 피드에 회의 사진 올린다. "오늘의 오피스 뷰 ☕️📊" - 멋진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포스트잇 가득, 다들 정장. "팀 워크숍 🚀" - 세미나실, 빔 프로젝터, 발표 자료. "금요일 회고 시간 🎯" - 깔끔한 회의실, 노트북들, 텀블러. 우리 사진은? "오늘도 굳 🍗🍺" - 치킨집, 맥주병, 셀카. 비교된다. 우리만 이렇게 대충 하나? 아니다. 다른 친구 생각난다. 작년에 창업한 선배. 얘도 비슷했다. 맨날 저녁에 삼겹살 회의. 근데 지금 시리즈 A 받았다. 또 다른 후배는 완전 빡세게 한다. 아침 8시 출근, 저녁 7시 퇴근, 회의는 회의실에서만. 근데 팀원 3명 나갔다. 분위기 안 맞는다고. 정답은 없는 건가? 생산성이라는 함정 유튜브 켠다. 생산성 영상 많이 본다. "1일 1깃커밋", "아침 루틴", "시간 관리". 어제 본 영상. "성공한 스타트업의 회의 문화". 실리콘밸리 어쩌고. 아마존의 6페이지 메모 어쩌고. 우리랑 다르다. 우리는 치맥하면서 "야 이거 어떻게 생각해?" "오 굿인데?" 끝. 근데 생각해보면, 오늘 회의에서 나온 게 있긴 하다. 재민이가 보여준 온보딩 화면. 다들 치킨 먹으면서 봤지만, 피드백 제대로 했다. "이 버튼 위치 옮기자", "폰트 키우자", "컬러 톤 맞추자". 재민이가 실시간으로 피그마 수정했다. 20분 만에 결정됐다. 정식 회의였으면? 회의 일정 잡고, 회의실 예약하고, 발표 자료 만들고, 회의하고, 회의록 쓰고, 다음 회의 잡고. 일주일 걸렸을 수도. 또 있다. 수진이가 한 틱톡 트렌드 얘기. 그냥 수다인 줄 알았다. 근데 나중에 "우리도 챌린지 하나 만들어볼까?" 아이디어 나왔다. 술김에 나온 얘기지만 괜찮았다. 동현이랑 나눈 투자 얘기도. "요즘 투자 분위기 안 좋다"는 현실적인 얘기. 정식 회의였으면 이런 솔직한 말 안 나왔을 수도. 대표인 나한테 눈치 봤을 거다. 치맥하면서 편하게 말하니까 나온 얘기들. 그럼 이게 맞는 건가? 치맥 회의가 우리 방식인 건가? 근데 또 불안하다. 8만원 쓰면서 이게 맞나 싶고. 런웨이 4개월인데 매일 이러면 안 될 것 같고.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하나 침대에 누웠다. 천장 본다. (천장에 곰팡이 생겼다. 집주인한테 말해야 하는데.) 생각을 정리한다. 우리는 친구다. 그게 우리 강점이다. 편하게 얘기한다. 솔직하게 말한다. 위계 없이 아이디어 낸다. 새벽에도 연락 된다. 급할 땐 주말도 일한다. 불평 없이. 이게 다 친구라서 가능하다. 근데 우리는 회사기도 하다. 투자자한테 책임져야 한다. 매출 만들어야 한다. 성장해야 한다. 치맥만 하면서 안 된다. 그럼 어떻게? 아이디어 떠올랐다. 내일 팀원들한테 말해봐야겠다. "매주 월요일 오후 3시, 정식 회의 하자. 카페에서. 1시간. 아젠다 미리 정하고. 회의록 쓰자." "나머지는 자유. 치맥도 하고. 근데 월요일 1시간만 빡세게." 중간 지점. 우리다운 방식과 제대로 된 회사 사이. 이게 답일까? 모르겠다. 해봐야 안다. 어쨌든 내일도 새벽 3시. 잠이 안 온다. 맨날 이 시간에 이런 생각한다. '우리 잘하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스타트업에 정답은 없다. 남들 따라 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근데 하나는 확실하다. 오늘 치맥하면서 웃었다. 팀원들 얼굴 밝았다. "내일 봐!" 하면서 헤어질 때 다들 즐거워 보였다. 대기업 다니는 고등학교 친구한테 들었다. 회의 시간에 다들 죽은 눈. 돌아가면서 형식적으로 발표. 끝나면 다들 한숨. 우리는 다르다. 치맥 회의 끝나고 다들 신난다. "오늘 굿이었다!" "내일 이거 해보자!" 에너지가 있다. 그게 스타트업 아닐까. 물론 돈은 중요하다. 효율도 중요하다. 성장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근데 에너지 없이 어떻게 버티나. 창업은 마라톤이다. 즐기면서 뛰지 않으면 중간에 포기한다. 치맥이 우리 에너지원이면 어때. 그것도 우리 방식이다. 내일도 저녁 7시쯤 단톡 올 거다. "저녁 어디서?" "치맥?" "ㅇㅋ" 갈 거다. 치킨 먹고 맥주 마시면서 떠들 거다. 일도 하고 수다도 떨 거다. 그게 우리 회의다.회의인지 노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계속 간다. 치맥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