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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다
- 10 Dec, 2025
연애를 접다 - 창업의 숨겨진 비용
연애를 접다 - 창업의 숨겨진 비용 언제부터였을까 창업하고 연애를 접었다. 정확히는 접은 게 아니라 자동으로 멈췄다. 마지막 데이트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1년 반 전쯤? 그때는 아직 학교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 하던 시절이었다. "바쁘다"는 말을 몇 번 했더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시작이었다. 창업하고 나서는 아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투자 받고, 팀 꾸리고, 개발하고, 유저 모으고.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연애는 자동으로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났다.근데 요즘 들어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연애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아니, 하고 싶기는 한 걸까? 데이팅 앱을 지운 날 창업 초기에 데이팅 앱을 깔았던 적이 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프로필을 만들었다. "26세, 스타트업 대표, AI 툴 개발 중." 사진은 데모데이 발표하던 거 올렸다. 나름 멋있어 보였다. 매칭은 꽤 됐다. 근데 대화가 문제였다. "언제 시간 돼요?" "이번 주는 좀..." "다음 주는요?" "그때도 피칭이..." 3번 정도 이러니까 상대방도 포기했다. 당연하지. 나도 나한테 짜증났을 거다. 결정적이었던 건 한 번은 진짜 시간 내서 만났던 날이었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데 슬랙 알림이 계속 왔다. 서버가 다운됐다고. 긴급 상황. "죄송한데 급한 일이 생겨서..." 30분 만에 자리를 떴다. 택시 타고 가면서 노트북 켰다. 상대방한테 사과 메시지 보냈는데 답은 안 왔다. 그날 밤 앱을 지웠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데이팅 앱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연애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연애할 여유가 없었다. 팀원들의 연애 팀원 중에 한 명이 최근에 연애를 시작했다. 좋아 보였다. 회의 끝나고 저녁 약속 있다고 먼저 간다. 주말에 연락하면 "오늘은 좀..."이라고 한다. 당연한 거다. 주말인데. 근데 나는 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부럽기도 하고, 동시에 약간 서운하기도 하고. '나는 매일 밤새우는데 쟤는 데이트하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었다. 완전 꼰대 마인드잖아. 대표가 이러면 안 되는데. 그 팀원한테 말했다. "좋겠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는데." 쟤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형도 하면 되잖아요." 그래, 하면 된다. 근데 어떻게?하루에 4시간 자고 일하는 사람이 연애를 해? 데이트 시간은 어디서 나와? 주말에 만나? 나는 주말도 일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부모님의 잔소리 한 달에 한 번 부모님이랑 통화한다. 요즘은 그것도 미루게 된다. 어머니가 물어보신다.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아니요. 바빠서요."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친구 소개팅이라도 해봐." "나중에요. 지금은 회사가..." "회사, 회사. 회사만 하다가 늙는다." 전화 끊고 나면 기분이 묘하다. 어머니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 26살. 동기들은 연애하고, 어떤 애들은 결혼도 준비한다. 나는 뭐하나 싶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지금 연애하면 상대방한테 미안할 것 같다. 시간도 못 내고, 돈도 없고, 미래도 불확실하고. 이런 상태로 누구를 만나? 그게 예의인가? 차라리 성공하고 만나는 게 맞지 않나. 그때는 여유도 있고, 자신감도 있고. 근데 성공이 언제인데? 런웨이 4개월 남았다. 다음 투자 유치 안 되면 문 닫을 수도 있다. 그럼 다 끝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애 생각할 여유가 어딨어. 새벽 3시의 생각 코딩하다가 문득 멈춘다. 새벽 3시. 인스타를 켠다. 타임라인에 동기 커플 사진이 올라온다. 제주도 여행. 좋아 보인다. 댓글을 단다. "부럽다 ㅋㅋ" 진짜 부럽다. 창업하면서 포기한 게 많다. 졸업, 취업, 안정적인 미래. 그리고 연애. 근데 연애는 좀 다르다. 다른 건 나중에 해도 되는데, 연애는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26살. 나이가 많은 건 아닌데, 창업하면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2년이 10년 같다. 30살 되면 어떨까. 그때도 이러고 있을까. 아니면 성공해서 여유가 생길까.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지금은 안 된다는 것.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노트북을 다시 켠다. 코드를 짠다. 이게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다. 숨겨진 비용 창업의 비용을 계산할 때 사람들은 돈만 생각한다. 투자금, 운영비, 월급. 근데 진짜 비용은 따로 있다. 시간, 건강, 관계. 그중에서도 연애는 가장 조용히 사라지는 것 같다. 극적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어느 날 보면 그냥 없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그냥 없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지금은 집중할 때'라고 생각했다. 성공하면 다 돌아온다고. 근데 요즘은 확신이 안 선다. 정말 돌아올까? 아니면 이게 새로운 일상이 되는 걸까? 팀원이 데이트하고 오는 걸 보면 생각한다. '나도 저랬는데.' 대학교 2학년 때는 연애가 제일 중요했다. 데이트 약속 있으면 다른 건 다 미뤘다. 지금은 반대다. 회사가 제일 중요하고, 다른 건 다 미룬다. 언제 바뀐 걸까. 그리고 다시 바뀔 수 있을까. 혼자 먹는 저녁 저녁은 주로 혼자 먹는다. 팀원들이랑 회의하면서 먹을 때도 있지만, 그건 회의지 식사가 아니다.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사무실에서 먹는다. 노트북 켜놓고. 유튜브 틀어놓고. 커플 유튜브가 추천에 뜬다. 클릭한다. 보면서 먹는다. '재밌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영화 보고, 같이 산책하고. 근데 나는 지금 뭐해. 편의점 도시락 먹으면서 커플 유튜브 보고 있어. 웃긴다. 진짜 웃겨. 포크를 내려놓는다. 갑자기 배가 안 고프다. 노트북을 닫는다. 코딩으로 돌아간다. 이게 더 편하다. 언젠가는 팀원이 물어봤다. "형은 언제 연애할 거예요?" "엑싯하고." "그게 언제인데요?" "모르지." "그럼 계속 혼자?" "그런 셈이지." 쟤가 웃었다. "그건 좀 슬프지 않아요?" 슬프다. 맞다. 근데 어쩔 수 없다. 지금은 회사가 먼저다. 팀원 4명 먹여 살려야 하고, 투자자들 믿음 배신하면 안 되고, 유저들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내 개인 감정은 그다음이다. 연애는 사치다. 지금의 나한테는. 그래서 접었다. 정확히는 접은 게 아니라 미뤘다. 나중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중으로. 카페에서 본 커플 오늘 카페에서 작업하는데 옆 테이블에 커플이 앉았다. 대학생으로 보였다. 과제하면서 장난치고, 웃고, 커피 나눠 마시고.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자꾸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모르면 나한테 물어봐야지." "너도 모르잖아." "그래도 같이 고민하면 되지." 같이 고민하면 된다.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혼자 고민한다. 회사 문제도, 개발 이슈도, 투자 전략도. 전부 혼자. 팀원들이 있지만, 결국 결정은 내가 한다. 책임도 내가 진다. 외롭다. 인정한다. 외롭다. 창업이 외로운 건 알았다. 근데 이렇게까지 외로운 줄은 몰랐다. 연애를 하면 덜 외로울까? 아니면 더 외로울까? 누군가 옆에 있는데 시간을 못 내면, 그게 더 외로운 거 아닐까. 차라리 지금처럼 아예 없는 게 나은 건가. 모르겠다. 카페를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커플들이 많이 보였다. 다 행복해 보였다. 4개월 후 런웨이가 4개월 남았다. 4개월 안에 투자 유치를 하거나, 수익화를 하거나, 아니면 문을 닫거나. 요즘은 이 생각밖에 안 난다. 연애? 그건 4개월 후에 생각하자. 살아남으면. 근데 4개월 후에 살아남으면 또 다른 4개월이 온다. 그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창업은 끝이 없다. 항상 다음 목표가 있고, 다음 위기가 있고, 다음 선택이 있다. 그러면 연애는 평생 못 하는 건가? 성공한 창업가들 보면 다들 연애하던데.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어떻게 한 거지? 시간을 어떻게 만든 거지? 아니면 나보다 더 잘해서 여유가 생긴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벅차기만 한 걸까? 진짜 비용 창업하면서 계산했던 것들이 있다. 투자금 5000만원, 월 운영비 1200만원, 팀원 월급 100만원씩. 다 맞았다. 숫자는 정확했다. 근데 계산 못 했던 게 있다. 새벽 4시까지 일하면서 잃는 건강. 친구들 모임에 못 가면서 멀어지는 관계. 부모님 전화를 피하면서 쌓이는 죄책감. 그리고 연애를 포기하면서 느끼는 외로움. 이건 숫자로 안 나온다. 엑셀 시트에 안 뜬다. 근데 진짜 비싼 비용이다. 돈은 다시 벌 수 있다. 투자 받으면 된다. 근데 시간은? 관계는? 감정은? 26살의 나는 다시 안 온다. 이 순간은 다시 안 온다. 그걸 지불하면서 창업하는 거다. 알고 있었나? 계약서에 이런 조항은 없었는데. 그래도 근데 후회는 안 한다. 연애 못 하는 거 외롭지만, 회사 만드는 건 재밌다. 새벽까지 코딩하는 거 힘들지만, 유저 피드백 오면 신난다. 돈 없는 거 불안하지만, 우리 서비스 쓰는 사람 2만 명이다. 이게 내가 선택한 길이다. 연애는 나중에 해도 된다. 30살에 해도, 35살에 해도. 지금은 이 길을 끝까지 가보고 싶다. 외롭지만, 또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다. 팀원들이 있고, 유저들이 있고, 만들고 있는 뭔가가 있다. 그게 지금은 충분하다. 거짓말이다. 충분하지 않다. 근데 참을 수는 있다. 4개월, 아니 1년, 2년. 언젠가는 여유가 생길 거다. 그때 생각하자.새벽 4시. 오늘도 혼자 코딩한다. 외롭지만 익숙하다. 이게 내 일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