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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 03 Dec, 2025
월 100만원씩 4명이 일하는데 수익은 0원입니다
월 100만원씩 4명이 일하는데 수익은 0원입니다 오늘의 지출 카페 라떼 4500원. 점심 김밥 4000원. 저녁 치킨 18000원. 오늘 하루 26500원 썼다. 근데 오늘 매출은 0원이다. 어제도 0원. 그제도 0원. 이번 달 내내 0원.25일이 무서운 이유 팀원 4명. 나 빼고. 월급 각각 100만원씩. 총 400만원. 서버비 50만원. AWS 청구서 볼 때마다 심장 쿵. 광고비 100만원. 페이스북, 인스타, 구글. 유저는 늘어야 하니까. 합치면 550만원이 매달 25일에 빠져나간다. 근데 들어오는 돈은 0원이다. 엔젤 투자금 5000만원. 지금 남은 거 2200만원. 계산기 두들겨봤다. 4개월. 4개월 후면 통장이 텅 빈다.팀원들 몰래 하는 계산 민수는 개발. 프론트엔드 다 걔가 한다. 지훈이는 디자인. UI/UX 감각 좋다. 현우는 마케팅. SNS 운영하고 광고 돌린다. 수진이는 영업. 파트너사 미팅 다닌다. 다 나보다 한두 살 어리다. 학교 후배들. "형, 저희 믿어요." 이 말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얘네들 알바하면 월 150은 벌 텐데. 취업하면 신입이어도 3000은 받는다. 근데 나한테는 100만원. "나중에 성공하면 스톡옵션으로 보상할게." 이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건지 요즘 매일 생각한다. 새벽 3시에 민수가 커밋 올린 거 보면 눈물 난다. 얘도 잠은 자야 하는데.부모님한테는 말 못 한다 엄마가 어제 전화했다. "요즘 어떠니? 돈은 모아지고 있고?" "네. 잘 되고 있어요." 거짓말이다. 아빠는 공무원이었다. 정년퇴직 2년 남았다. 평생 월급 꼬박꼬박 받으며 사셨다. 그런 아버지한테 "투자금 4개월 후면 바닥입니다" 라고 말할 수가 없다. 작년에 창업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 표정 기억난다. "그래. 해봐라. 근데 1년 해보고 안 되면 취업해라." 벌써 1년 6개월 지났다. 안 된 건 아니다. 유저는 2만 명이다. 근데 돈을 못 버는 거다. 이게 더 무섭다. 아예 망한 것도 아니고. MAU 2만의 함정 월간 활성 유저 2만 명. 숫자로 보면 괜찮아 보인다. 투자 미팅 갈 때 이 숫자 말하면 반응 좋다. "오, 견인력은 있네요?" 근데 다음 질문이 칼이다. "수익 모델은요?" "...지금은 유저 확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 수익화?" "다음 분기부터 프리미엄 모델 도입 예정입니다." 계획은 있다. 근데 확신은 없다. 무료로 쓰던 사람들이 돈 낼까? 월 9900원짜리 구독권. 누가 살까? 밤마다 이것만 생각한다. 유저 2만 중에 1%만 전환돼도 200명. 200만원이다. 5%면 1000만원. 근데 현실은 0.1%도 안 될 것 같은 불안. 경쟁사를 볼 때마다 비슷한 서비스 하는 곳 3개 안다. 하나는 시리즈 A 받았다. 30억. 하나는 MAU 10만. 우리보다 5배 많다. 하나는 작년에 문 닫았다. 세 번째 거 보면 위로된다. 우린 아직 살아있으니까. 첫 번째 거 보면 자괴감 든다. 우린 왜 못 받았을까. 두 번째 거 보면 조급해진다. 우린 왜 안 늘어날까. 경쟁사 대표 나이 봤다. 32살. 나보다 6살 많다. 경력도 네이버 5년 다녔다. 나는 대학교 4학년 휴학생이다. 투자자들이 날 보는 눈이 느껴진다. "애가 열심히는 하는데..." 열심히는 하는데. 이 말이 제일 무섭다. 동기들 인스타그램 요즘 인스타 잘 안 본다. 보면 흔들려서. 그래도 가끔 본다. 동기 재현이가 삼성 입사했다. 축하 댓글 500개. "연봉 얼마야?" DM 왔는데 답 안 했다. 수지는 공기업 들어갔다. 9급 공무원. "칼퇴 최고" 라는 스토리 올렸다. 나는 칼퇴가 뭔지 모른다. 퇴근 개념 자체가 없다. 민재는 대기업 마케터 됐다. 신입인데 4000 받는다고 들었다. 나는 월급이 없다. 나한테는 월급 줄 사람이 없으니까. 부럽냐고 물으면 솔직히 부럽다. 매달 통장에 돈 꽂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근데 후회되냐고 물으면 아니다. 아직은. 새벽 4시의 계산 지금 시각 새벽 3시 47분. 오늘도 계산기 두들긴다. 광고비를 50만원으로 줄이면? 2개월 더 버틴다. 팀원 월급을 80만원으로 깎으면? 절대 못 한다. 내가 알바라도 뛰면? 언제 개발하지. 추가 투자 받으면? 지금 실적으로는 힘들다. 부모님한테 손 벌리면? 차라리 접겠다. 대출 받으면? 담보가 뭐가 있나. 모든 경우의 수 다 계산해봤다. 결론은 하나다. 4개월 안에 수익 만들거나. 망하거나. 그래도 출근은 한다 오늘도 카페 간다. 1시에 일어나서. 민수랑 2시에 회의. 새 기능 기획. 지훈이랑 3시에 디자인 리뷰. 현우는 광고 성과 보고. 전환율 0.8%래. 수진이는 파트너사 미팅 갔다. 좋은 소식 있대. 애들 얼굴 보면 힘이 난다. 진짜다. "형, 이번 업데이트 대박날 것 같아요." 민수 이 말에 웃었다. "그래. 대박 나야지." 대박 나야 한다. 4개월 후에 우리가 살아있으려면. 매출 0원인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26살 대표가 증명하려면. 오늘의 지출 2 저녁 치킨 18000원. 팀원들이랑 나눠 먹었다. "형, 오늘 제가 살게요." 민수가 말했다. "야, 됐어. 내가 산다." 100만원밖에 못 주면서 치킨값도 못 내면 안 되지. 카드 긁었다. 개인 카드. 회사 카드 아니다. 요즘 팀 경비는 다 내 개인 카드로 긁는다. 회사 통장은 월급이랑 서버비 때문에 아껴야 해서. 오늘 하루 총지출 44500원. 오늘 매출 0원. 내일도 똑같을 것이다. 모레도. 글피도. 근데 나는 내일도 카페 간다. 팀원들 만나러. 우리 서비스 만들러. 0원짜리 매출이지만 20000명이 쓰는 서비스. 언젠가는 돈을 벌 서비스. 그렇게 믿는다.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내일 못 일어난다.4개월.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 우리 한번 해보자.
- 03 Dec, 2025
대학교 4학년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 비교의 악순환
대학교 4학년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 비교의 악순환 새벽 3시의 인스타그램 또 잠이 안 온다. 코딩하다가 막히면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켠다. 피드 첫 번째. 민수 친구 입사 축하 글. 사진 다섯 장. 정장 입은 민수, 회사 로비, 동기들이랑 회식. 좋아요 347개. "축하해!!", "부럽다 ㅠㅠ", "연봉 얼마야?" 댓글 줄줄이. 스크롤. 지현이도 내정자. 대기업. "22년간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아요 521개. 또 스크롤. 준영이는 공기업. "드디어 사회인 1일차." 한 명도 아니고. 일주일 사이에 다섯 명. 나는 지금 카페 구석에서 에너지드링크 세 번째 캔 따고 있다. 오늘 투자 미팅 두 번 다 거절당했다. "좋은데요, 근데 트랙션이 아직..." 같은 소리. 통장엔 380만원. 다음 달 팀원들 월급 400만원.폰 잠금. 다시 켠다. 민수 프로필 들어간다. 스토리 본다. 신입사원 연수. 회사 식당. "오늘 메뉴 개꿀." 회사 카드로 끊은 스벅. 부럽냐고? 솔직히 모르겠다. 부러운 건 확실성이다. 매달 250만원이 찍히는 통장. 4대 보험. 명함에 적힌 회사 이름. "뭐 하세요?" 물으면 3초 안에 설명 끝나는 직업. 나는? "AI 기반 숏폼 편집 툴 만들고 있어요." "아 유튜브요?" "아니... 그게 아니라..." 5분 설명해도 "아 그렇구나..." 하는 반응. 근데 민수 월급으로는 내 꿈 못 산다. 이게 문제다. 점심 먹다가 온 카톡 오후 2시. 일어났다. 엄마 카톡. "아들 밥 먹었니" "응" "민수 엄마가 민수 취업했다고 자랑하시더라" "..." "너는 학교는 언제 가니" 읽씹. 답장 못 하겠다. 우리 부모님 세대한테 '창업'은 '백수'랑 비슷한 말이다. 특히 졸업도 안 하고 하는 창업은. "요즘 젊은 애들은 다 창업한다며?" 이런 반응. 아니 다 안 한다고. 내 과 120명 중에 나밖에 없다고. 지난번 명절 때. 큰아버지가 물었다. "취업은 안 하고 뭐 한다고?" "창업했어요." "아 장사? 뭐 파는데?" "아니 서비스를..."설명 포기했다. 아빠는 더 직접적이다. "1년 반 했으면 됐다. 이제 취업 준비해라. 너 학점 괜찮잖아." "아빠, 지금 투자 받았고 서비스 성장하고 있어." "그래서 돈은 버니?" "아직은..." "봐라. 안 되는 거야." 안 되는 게 아니라 안 된 거다. 아직. 차이를 모르신다. 통화 끊고 나면 항상 이런 생각. '아 취업할까.' 10초 뒤. '미쳤나. 지금 포기하면 1년 반이 뭐가 되냐.' 이 루프를 하루에 세 번씩 돈다. 팀 회의에서 나온 말 저녁 7시. 팀원들이랑 치킨 시켜놓고 회의. 주형이가 말했다. "형, 솔직히 물어봐도 돼요?" "어 말해봐."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해요? 돈 없잖아요." 다들 침묵. 현우가 거든다. "저는 괜찮은데, 근데 집에서 취업하라고 난리예요. 제 친구들 다 취업했거든요." 알지. 나도 안다고. "4개월 더 해보자. 그때까지 MAU 5만 만들고, 수익화 모델 하나는 검증하자. 그때도 안 되면..." 말 끝을 못 맺었다. 그때도 안 되면 뭐? 해산? 그 말을 어떻게 하냐. 민지가 웃으면서 말한다. "괜찮아요 대표님. 저희 믿고 있어요." 고맙지만 미안하다. 쟤네도 26살이다. 내 나이. 친구들 취업하는 거 보면서 여기 있는 거다.회의 끝나고 혼자 남았다. 치킨 먹다 만 것 포장해 달라고 했다. 내일 아침 먹으려고. 아껴야 한다. 카페 나오는데 옆 테이블 대학생들 얘기가 들렸다. "너 삼성 지원했어?" "응 근데 떨어질 듯." "에이 너 학점 되는데?" 부럽다. 삼성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게. 난 삼성 서류도 못 넣는다. 휴학생이라. 복학하면? 졸업하고 취업하면 28살. 그때 신입으로 들어가서 3년 차면 31살. 그때까지 남들 따라가는 인생. 싫다. 그건 싫다. 성공한 20대 창업가 기사 밤 11시. 침대에 누워서 또 폰. 기사 하나 떴다. "25세 창업가, 시리즈A 50억 투자 유치." 클릭 안 하려다가 했다. 사진 본다. 나랑 동갑. 정장 입고 투자자들이랑 악수. "고등학교 때부터 코딩 시작, 20살에 첫 창업, 23살에 엑싯, 25살에 재창업." 아 닫아야지. 근데 계속 본다. "성공 비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뻔한 말. "부모님 지원? 없었습니다. 모두 제 힘으로." 진짜? 의심된다. 댓글 본다. "요즘 애들은 이렇게 대단해?" "나 25살 때 뭐 했지..." "부모 찬스 아닐까?" 마지막 댓글. "이런 애들은 소수고 대부분 망한다는 거 아무도 안 알려줌ㅋㅋ" 좋아요 1200개. 폰 던진다. 이불 뒤집어쓴다. 왜 비교하냐고? 안 하고 싶다. 근데 자꾸 비교하게 만든다. 인스타도, 기사도, 부모님도, 세상이. 26살. 이 나이에 성공 못 하면 늦는다는 강박. 누가 만든 건지 모르겠는데 다들 믿는다. 나도 믿는다. 민수는 대기업 2년 차 되면 28살. 나는? 28살에 뭘까. 유니콘? 아니면 백수? 둘 중 하나다. 중간은 없다. 이게 무섭다. 새벽 코딩과 다짐 새벽 1시. 결국 일어났다. 노트북 켠다. 코드 짠다. 새 기능. 유저들이 원하던 거. 3일 안에 배포하겠다고 공지했다. 손이 움직인다. 머리는 복잡한데 손은 안다. 이걸 왜 하는지. 언제 시작했는지. 1학년 때. 과 친구들이랑 해커톤 나갔다. 밤새서 만든 앱. 상 못 받았다. 근데 재밌었다. 내가 만든 게 작동하는 게. 누군가 쓰는 게. 2학년 때. 동아리에서 토이 프로젝트. 우리끼리 쓰려고 만든 시간표 앱. 과 전체로 퍼졌다. 500명이 썼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이거 직업 될 수도 있겠다.' 3학년 여름. 창업 결심. 부모님한테 말씀드렸다. "1년만 해보게 해주세요." "안 되면?" "취업할게요." "약속이다." 지금 1년 6개월. 약속 깼다. 근데 그만둘 수가 없다. MAU 2만. 적은 숫자 아니다. 2만 명이 내가 만든 걸 쓴다. 매일. 리뷰 읽는다. "이거 없으면 일 못 해요." "개발자분들 사랑해요." "유료 전환하면 바로 결제할게요." 이게 나를 붙잡는다. 돈? 아직 없다. 명예? 아무도 모른다. 안정? 없다. 근데 있다. 내가 만든 게 누군가한테 쓸모 있다는 것. 이게 전부다. 민수는 회사 톱니바퀴 하나다. 나쁜 말 아니다. 톱니바퀴도 필요하다. 근데 나는 톱니바퀴 되기 싫다. 기계 자체를 만들고 싶다. 새벽 3시. 기능 완성. 커밋. 푸시. 배포 예약. 침대로 기어간다. 내일 또 일어나면 또 비교할 거다. 민수 봤나, 준영이 연봉 들었나, 나는 뭐 하고 있나. 근데 괜찮다. 비교는 하루만 하는 거다. 일은 365일 한다. 결국 선택의 문제 솔직히 말한다. 확신 없다. 4개월 뒤에 망할 수도 있다. 부모님 말씀이 맞을 수도 있다. 민수가 더 행복할 수도 있다. 근데 안 해봤는데 어떻게 알아. 대학교 4학년들. 지금 대부분 취업했다. 현명한 선택이다. 비난 안 한다. 부럽기도 하다. 근데 나는 다른 길 간다. 멍청할 수도 있다.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다. 그래도 간다. 비교는 계속될 거다. 인스타는 계속 열릴 거다. 새벽마다 현타 올 거다. 근데 아침마다 노트북은 열릴 거다. 코드는 짜질 거다. 미팅은 나갈 거다. 망하면 그때 가서 취업한다. 28살? 30살? 늦었다고? 그럼 뭐 어쩔래. 그게 내 인생인데. 지금은 26살. 창업 1년 6개월 차. 통장에 380만원. 팀원 4명. MAU 2만. 이게 내 스펙이다. 민수 스펙이랑 비교하면 진다. 당연히. 근데 나는 나랑 비교한다. 1년 전 나. 6개월 전 나. 어제 나. 그거면 된다.내일도 인스타 열 거다. 또 비교할 거다. 근데 내일도 코딩할 거다. 그게 답이다.
- 02 Dec, 2025
투자자 미팅 때 정장 입는 이유 - 26살이 50대처럼 보여야 하나
26살, 정장 입고 거울을 본다 오후 2시. 미팅 1시간 전이다. 샤워하고 옷장을 열었다. 검은색 정장 바지, 흰 셔츠, 네이비 넥타이. 이 조합은 이제 패턴이 됐다. 투자자 미팅이 있으면 자동으로 손이 간다. 거울 앞에 섰다. 이상하다. 내가 맞나? 26살인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넥타이를 매면 목이 답답했다. 평소처럼 후드티 입으면 안 될까? 답은 알고 있다. 안 된다. 작년 겨울, 첫 번째 투자자 미팅에서 떨어졌다. 피드백은 명확했다. "학생이시네요?" 투자자는 웃으면서 말했는데, 그 웃음이 멍이 들 정도로 아팠다. 내가 한 일이 뭔데. 2년을 코딩했는데. 5000만원 투자받은 게 뭔데. 다 학생 같다고? 그 이후부터 옷에 신경을 썼다. 정장을 샀다. 가죽 구두도 샀다. 헤어도 자주 잘랐다. 모두 같은 이유로. 나이를 속이기 위해. 거울에서 자신을 못 알아봤다. 셔츠 소매가 팔목을 졸라맸다. 넥타이가 얼굴을 작게 만들었다. 혼자 생각했다. 이게 나한테 도움이 되나? 아니면 해로운 거 아닌가? 투자 유치라는 게 결국 신뢰인데, 나를 감춘 채로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넥타이의 무게 투자자들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이 계속 맴돈다. 내가 만든 서비스는 틱톡 세대를 위한 거다. 숏폼 비디오 편집 툴. 우리 타겟은 20대다. MZ 세대다. 근데 그 고객들을 사겠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할 때는 나 자신을 거짓말하고 있다. 이게 아이러니다. 미팅에서 만난 투자자들 대부분 50대다. 한두 명은 60대다. 그들은 "젊은 세대의 관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경험 많은 CEO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순이다. 하지만 난 그 모순을 입으로 해결한다. 정장으로. 정장을 입으면 확실히 말을 더 듣는다. 세 번 미팅 했는데 정장 입었을 때가 다 성공했다. 피칭 자료는 똑같다. 말도 같다. 다른 건 옷뿐이다. 그게 정말 다인 걸까? 팀원들은 내가 정장 입고 나갈 때마다 "대표 좀 멋있네"라고 한다. 농담으로. 근데 그 뒤에 "근데 어색한데?"라고 덧붙인다. 맞다. 어색하다. 내가 내 몸 안의 오래된 버전을 걷고 다니는 느낌이다. 어제 미팅에서 투자자가 물었다. "CEO분은 어디서 일하셨어요?" 나이를 짐작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난 빠르게 말했다. "지금 이 회사가 처음이고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배우는 중입니다." 말을 끝내고 생각했다. 이 정장이 없었으면 이 질문 자체가 더 많이 나왔을 걸.딱 한 번만 안 입은 날 우리 투자자들 중에 한 명은 30대다. 한국 유명 창업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랑 첫 미팅은 카페에서 했다. 정장 안 입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깜빡했다. 시간이 없었다. 가다가 연락 받고 바로 갔다. 흑 후드티, 검은 청바지, 스니커. 전형적인 개발자 스타일이었다. 미팅 분위기가 완전 달랐다. 그 투자자는 내가 한 말을 진짜 듣는 거 같았다. 중간에 끼어들었다. 맞아, 그 생각 좋은데? 하면서. 끝나고 30분을 더 얘기했다. 투자 조건도 다른 투자자보다 낫게 왔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봤다. "그때 당신이 편해 보였어. 거짓말을 안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게 좋았어." 그 말을 들으니 현타가 왔다. 그동안 내가 정장으로 뭐를 했단 말인가. 신뢰를 얻었나? 아니다. 의심만 샀다. 상대가 속으로 생각했을 거다. 저 애는 왜 자기 나이를 감추려고 할까? 뭔가 숨기려는 건 아닐까? 그 후로 미팅 날씨가 바뀌었다. 정장 입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조금 벗어났다. 어제도 반팔 셔츠에 슬랙 바지로 갔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이 내 나이가 아니라 사업에 집중됐다. 근데 여전히 불안하다. 중요한 미팅이면 자동으로 정장을 입으려는 손이 움직인다. 습관처럼. 트라우마처럼.나이는 언제쯤 무기가 될까 26살이라는 게 정말 약점일까? 아니면 그냥 나의 자신감 부족이 약점인 걸까? 생각해보니 우리 고객들은 25살이다. 내 또래다. 그들한테 내가 26살이라는 건 강점이다. 그들을 이해하니까. 그 다음 세대를 예측하니까. 근데 투자자 앞에서는 약점이 된다. 경험 부족으로 읽히니까. 말이 안 되는 거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현재 세대를 공략하는 스타트업한테 창업자의 나이는 큰 의미가 없어야 한다. 오히려 나이가 적을수록 목표 고객에 가깝다는 뜻이다. 근데 투자자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나이 많은 CEO = 신뢰도 높음. 이 등식이 깨질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우리 팀원들은 다 20대다. 한 명은 아직 학생이다. 개발은 정말 잘한다. 근데 투자 때문에 자기한테 경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보인다. 내 트라우마를 팀한테 전해 주고 싶지 않은데, 이미 전해진 것 같다. 어제 회의 때 한 팀원이 물었다. "대표, 우리 너무 어린 거 아닐까?" 아니야. 우리가 하는 게 맞아. 이 서비스를 이만큼 만든 게 우리인데. 왜 자꾸 미안해하지? 근데 그 말을 하면서도 내 머리는 다음 투자 미팅을 생각했다. 정장을 입을지 입지 않을지. 그냥 한번 안 입어보자. 진짜로. 중요한 미팅이든 뭐든. 그리고 떨어지면? 그땐 그때다. 적어도 날 감춘 채로 신뢰를 받은 게 아닐 테니. [IMAGE_4]거울에서 넥타이를 풀었다. 다음 미팅은 이대로 가기로 했다.
- 02 Dec, 2025
오후 1시에 일어나는 대표의 생산성 논쟁
오후 1시에 일어나는 대표의 생산성 논쟁 알람이 울린다. 오후 1시 5분. 핸드폰을 집어 들고 슬랙을 본다. 팀원들 메시지 12개. 아침부터 일했단 거네. "좋아, 나도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지." 침대에서 나온다. 어제는 새벽 4시에 잤다. 투자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영준 대표, 저는 매일 6시에 일어나요. 성공한 사람들은 다 아침형이더라고요." 카페에서 나오며 생각한다. 그럼 난 왜 성공 못 한 거냐. 새벽 4시까지 코딩하는 이유 사실 선택이 아니다. 필요다. 낮 시간은 미팅, 디버깅, 팀원 리뷰로 끝난다. "이거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일단 이렇게 수정해봤는데요." "아 이건 이렇게..." 문제는 이 시간들이 하나도 빠질 수 없다는 것. 직원이 4명이고, 나는 메인 개발자니까. 진짜 코딩하는 시간은 밤이다. 집에 가서 모니터 켜면 오후 9시. 팀원들 메시지 답장하고, 깃허브 풀리퀘스트 확인하고, 버그 패치하다 보면 새벽이다. 새벽 3시가 돼야 집중력이 생긴다. 왜 그럴까. 모르겠다. 그냥 그런 거 같다.새벽 4시에 자고 오후 1시에 깨는 게 비효율적인가. 그럼 밤 9시에 자고 아침 6시에 깨야 한다는 말인가. 그럼 미팅은 언제 하지. 투자자들은 언제 만나지. 팀원들한테 월급을 언제 주지. 낮에 할 게 너무 많다.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는 신화 카페에서 만난 투자자는 50대 초반이었다. "요즘 젊은 창업가들도 아침형이더라고. 5시 기상, 헬스장 가고..." 커피를 마신다. "네. 저도 아침에 운동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말은 그렇게 했는데. 속으로는 생각했다. 당신은 임원이라서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잖아. 내 하루는 24시간이 다 회사다. 헬스장? 농담 같다. 그 투자자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일했을 때 성공했다고 했다. 그럼 그건 좋다. 근데 난 왜? 난 새벽 4시까지 코드 짜고도 뭐가 문제라는 건지. 일어나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깨어 있는 시간에 뭘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나. 슬랙 알림과 카페 일정 오후 1시. 카페 가자. 맥북을 메고 나온다. 오후 2시. "이영준, 버그 났어." 코드를 본다. 30분이 걸린다. 오후 3시. 투자자 미팅. 정장을 입는다. 매번 그렇다. 나이를 티내고 싶지 않으니까. 오후 5시. 미팅 끝. 카페로 돌아온다. 슬랙에 알림 7개. 답장한다. 오후 7시. 팀원들 만난다. "이번 주 목표 달성률 60%네." "어? 뭐가 안 됐어?" "걔 쪽 기능이..." 회의는 1시간 반. 오후 9시. 집에 간다. 저녁은 안 먹었다. 라면을 끓인다.오후 10시. 코드를 본다. 집중 못 한다. 틱톡을 본다. "트렌드 분석이야." 라고 생각한다. 30분이 간다. 오전 12시. 드디어 집중된다.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다. 오전 2시. 깃허브에 푸시한다. "오늘 3개 버그 수정" 오전 4시. 침대에 눕는다. 생각한다. 내일은 뭐하지. 생산성을 재정의해야 한다 주 40시간 근무가 기준이 되는 시대는 끝났다. 특히 스타트업은. 아침 형 인간의 이미지는 좋다. 태양 뜨는 시간에 일어나고, 명확한 업무 시간이 있고, 일과 개인 시간이 분리되는. 아니. 그건 직장인이다. 직장인은 좋다. 창업가는 다르다. 런웨이가 4개월이면. 모든 시간이 일이다. 밤도, 낮도, 주말도. 자는 시간만 아니면. 아니, 자는 시간도 문제로 떠오른다. 새벽 3시에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난다. 침대에서 일어난다. 노션에 정리한다. 다시 자본 수 없다. 차라리 계속 일한다. 오후 1시에 일어나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건. 대체 누구 기준인가. 누가 정한 건가. 세상이?투자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저는 밤에 더 잘해요." "제 리듬이 있어요." "인간이 다 아침형 인간일 순 없잖아요." 근데 그러면 금방 말이 나온다. "또 핑계 대네." "이 정도 패기가 없으면 성공 못 해." 그래서 그냥 웃었다. "네, 노력하겠습니다." 오후 1시의 그 느낌 어제 또 새벽에 못 잤다. 실패가 싫어서다. "저희 서비스요, 이번 달까지 3만 MAU 가야 하거든요." "어? 지난달이 2만이었는데?" "네, 50% 성장해야 해요." 내가 한 말이다. 달성 못 하면? 뭐 하지. 투자자 후속 투자는? 팀원들 월급은? 내 등록금은? 침대에서 나온다. 오후 1시 5분. 핸드폰을 본다. 슬랙 알림. "대표님, 유입이 어제보다 5% 떨어졌어요." 아. 몸이 무겁다. 이건 나이 때문인가. 26살인데 벌써 이래. 샤워를 한다. 찬물로. 깨어나야 한다. 낮 시간은 금이다. 밤 시간은 진주다. 그래서 난 밤을 산다.오후 1시. 또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