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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이 친구인데 왜 대표 역할을 해야 할까

팀원이 친구인데 왜 대표 역할을 해야 할까

팀원이 친구인데 왜 대표 역할을 해야 할까 25일의 저주 매달 25일만 되면 배가 아프다. 알림이 뜬다. "이체 예정 알림 - 400만원." 팀원 네 명, 각자 100만원씩. 통장 잔고는 720만원. 이체하고 나면 320만원 남는다. 런웨이 계산하면 다음 달 25일 전에 뭐든 해야 한다. "형 입금 확인했어요 ㅋㅋ" 문자가 온다. 대학 동기 민준이다. 웃는 이모티콘 다섯 개 붙여서. 나도 웃는 이모티콘 보낸다. 근데 웃긴지 모르겠다. 창업하기 전엔 그냥 친구였다. 같이 수강신청 F5 누르던 사이. 새벽 3시에 라면 끓여 먹으면서 LOL 하던 사이. "야 너 발표 준비 안 했냐 ㅋㅋ" 이러던 사이. 이젠 내가 걔 월급 주는 사이다.처음엔 다 똑같았다 작년 여름에 시작했다. 창업 동아리 해커톤에서 만난 넷. 민준이는 프론트엔드, 수현이는 디자인, 재훈이는 마케팅, 나는 백엔드. "우리 이거 진짜로 해볼까?" 누가 먼저 말했는지 기억 안 난다. 술 먹고 했던 얘기였다. 근데 다음 날 다들 단톡방에 "진심이었음 ㅋㅋ" 이랬다. 처음 3개월은 다 똑같았다. 대표가 누군지도 몰랐다. 법인 등록할 때 누군가는 대표여야 해서 내가 한 거다. "네가 제일 나이 많잖아 ㅋㅋ" 그래서 된 대표다. 엔젤 투자받기 전까진 괜찮았다. 밤새 작업하다가 새벽 라면 끓여 먹고, "오늘 커밋 몇 개?" 이러면서 장난치고, 주말에 PC방 가서 한 판 하고. 그냥 동아리 프로젝트 열심히 하는 느낌. 근데 5000만원이 들어온 날부터 달라졌다. "이제 월급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재훈이가 물었다. 맞다. 투자금은 우리 돈이 아니다. 회사 돈이다. 회사원이면 월급 받아야 한다. "얼마 줘?" 민준이가 물었다. 나도 모르겠다. 얼마 주는 게 맞나. 100만원? 200만원? 대기업 신입 연봉 5000만원인데 우린? 근데 돈 떨어지면 우린 죽는데? "일단 100씩 받자. 돈 아껴야지 뭐." 수현이가 말했다. 다들 동의했다. 나도 100만원 받기로 했다. 대표라고 더 받으면 이상할 것 같았다. 근데 그날부터 뭔가 이상해졌다.친구는 잘못한 게 없다 민준이는 잘못한 게 없다. 월요일 오후 2시에 일어난다. 문제없다. 우리 출근 시간 자유다. 카페 가서 노트북 켜고 작업한다. 오후 6시까지. 네 시간 일했다. "형 저 오늘 이만 들어갈게요. 약속 있어서요 ㅋㅋ" 단톡방에 메시지 남긴다. 괜찮다. 우리 퇴근 시간도 자유다. 다음 날도 네 시간. 그다음 날도 네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 정도? 한 달이면 80시간? 나는 하루에 12시간 일한다. 주말도 일한다. 한 달에 360시간? 계산하면 안 되는데 자꾸 계산된다. 민준이한테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잘못한 게 없으니까. 우리 회사 규칙이 원래 그러니까. 내가 만든 규칙이니까. 그리고 민준이도 열심히 한다. 코드 퀄리티 좋다. 커밋 메시지 깔끔하다. 문서화 잘한다. 문제없다. 근데 왜 화가 날까.말을 꺼낸 날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민준이랑 카페에서 작업하다가 말했다. "민준아." "응?" "요즘 작업 시간이 좀 짧은 것 같은데." "아 진짜? 몇 시간 정도 하는 것 같아?" "글쎄 하루에 네 시간?" "그 정도 되나? 음 근데 효율적으로 하면 괜찮지 않아? ㅋㅋ" 효율적으로. "그래도 좀 더 많이 했으면 좋겠어. 우리 지금 런웨이 얼마 안 남았잖아." "아 그래? 근데 형 너무 스트레스 받는 거 아니야? 일이 전부는 아니잖아." 일이 전부는 아니다. 맞다. "나 이번 주 금요일 여행 가거든? 한 3일? 괜찮지?" "어 뭐 갔다 와. 근데 급한 작업 있는데." "주말에 하면 되지 뭐 ㅋㅋ" 주말에 하면 된다. 맞다. 근데 왜 기분이 나쁠까. 집에 와서 생각했다. 민준이는 직원이다. 나는 대표다. 대표는 직원한테 지시할 수 있다. 근데 민준이는 내 친구다. 친구한테 지시하는 건 이상하다. 그럼 난 뭐지. 월급날의 거리감 25일만 되면 느낀다. 내가 이체 버튼 누르는 사람이라는 게. 민준이는 받는 사람이라는 게. "형 입금 확인했어요 ㅋㅋ 고마워요~" 고맙다고 한다. 친구가 나한테 고맙다고 한다. 월급 받고. 뭐라고 답해야 할까. "어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긴 개뿔. 내 통장 잔고 320만원인데. "당연한 거지 뭐?" 당연하긴 한데 기분이 이상한데. "ㅋㅋ 수고했어!" 이렇게 답한다. 수고했다고 한다. 사장이 직원한테 하는 말을 한다. 친구 사이가 아니라 고용 관계가 된 느낌이다. 25일만 되면. 재훈이도 월급 받고 문자 보낸다. "형 감사합니다~" 존댓말한다. 평소엔 반말하는데 월급 받는 날엔 존댓말한다. 수현이는 아무 말도 안 한다. 입금 확인하고 읽씹한다. 그게 더 편한 건가. 모르겠다. 네 명한테 400만원 이체하고 나면 혼자 카페 간다. 아메리카노 시켜놓고 통장 본다. 320만원. 다음 달엔 어떻게 하지. 친구들은 여행 얘기한다. "다음 달에 제주도 갈까?" 나는 투자 유치 얘기한다. "다음 달까지 IR 자료 만들어야 돼." 같은 회사 다니는데 다른 세상 사는 느낌이다. 대표라는 역할 투자자 만나면 묻는다. "팀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동기들이랑 시작했습니다." "아 좋네요. 케미가 좋겠어요." "네 그렇습니다." 케미가 좋다. 맞다. 근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대표님이 제일 어리신 거 같은데 팀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네 저희는 수평적 문화를 지향합니다." 수평적 문화. 좋은 말이다. 근데 실제론 뭔지 모르겠다. 수평적이면 모두가 똑같아야 한다. 근데 나만 다른 것 같다. 나만 걱정한다. 나만 불안하다. 나만 새벽 4시에 잔다. "직원들과 갈등은 없나요?" "아뇨 친구들이라 괜찮습니다." 친구들이라 괜찮다. 진짜 그럴까. 민준이한테 "내일 데모데이인데 작업 끝내야 돼" 라고 말해야 할 때. 친구로서 말해야 하나. 대표로서 말해야 하나. 친구로서 말하면 "형 너무 조급한 거 아니야?" 돌아온다. 대표로서 말하면 "아 네 알겠습니다" 돌아온다. 근데 표정이 이상하다. 어느 쪽도 아닌 것 같다. 둘 다인 것 같다. 모르겠다. 혼자인 시간들 팀원들 퇴근하고 나면 혼자 남는다. "형 먼저 갈게요~" 민준이가 노트북 닫는다. 오후 7시다. "어 들어가." 나는 노트북 켠다. 카페 자리에 혼자 앉아 있으면 생각한다. 나도 7시에 퇴근하고 싶다.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고 싶다. 롤 한 판 돌리고 싶다. 넷플릭스 보고 싶다. 근데 안 된다. 회사가 망하면 어떻게 하지. 투자자한테 뭐라고 하지. 부모님한테 뭐라고 하지. 팀원들은 생각 안 하나. 궁금하다. 어제 민준이 인스타 스토리 봤다. 친구들이랑 홍대 갔다. 웃는 사진 올렸다. "오랜만의 금요일~" 캡션 달았다. 나는 그 시간에 IR 자료 만들었다. 인스타에 안 올렸다. 올릴 게 없었다. 재훈이는 주말에 등산 갔다. "힐링~" 스토리 올렸다. 나는 주말에 코딩했다. 오류 잡았다. "디버깅 완료" 스토리는 안 올렸다. 팀원들은 나를 대표로 본다. 친구로 본다. 둘 다 본다. 잘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나는 혼자라는 것이다. 말 못 하는 고민들 부모님한테 전화 왔다. "아들아 요즘 어때?" "네 괜찮아요." "회사는 잘 되고?" "네 잘 되고 있어요." 거짓말이다. 잘 안 된다. 런웨이 3개월 남았다. 팀원들이랑 관계도 이상하다. 근데 말 못 한다. 부모님한테 "친구들한테 월급 주는 게 힘들어요" 이러면 뭐라고 할까. "그럼 그만둬" 하실 거다. 친구들한테도 말 못 한다. 민준이한테 "너 요즘 일 너무 적게 하는 것 같아" 이러면 관계 깨진다. 재훈이한테 "런웨이 얼마 안 남았어" 이러면 불안해한다. 창업 동아리 선배한테 전화했다. 고민 얘기했다. "그래 힘들지. 나도 그랬어."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음 시간 지나면 정리돼. 남을 사람은 남고." 남을 사람은 남는다. 무슨 뜻이지. 친구들이 떠난다는 뜻인가. 고민 상담 받으려고 전화했는데 더 불안해졌다. 혼자 끙끙 앓는다. 새벽 4시까지 생각한다. 답은 안 나온다. 25살 대표의 무게 대학 동기들은 취업했다. 인스타에 입사 소식 올라온다. "새출발!" "열심히 하겠습니다!" 댓글 단다. "축하해 ㅋㅋ" 연봉 얼마 받나 궁금하다. 물어보진 않는다. 근데 알 것 같다. 신입 연봉 4000만원? 5000만원? 나는 월급 100만원 받는다. 1년에 1200만원. 4분의 1이다. 근데 나는 대표다. 직원 네 명 책임진다. 투자금 5000만원 책임진다. 회사 망하면 내 책임이다. 동기들은 퇴근하면 끝이다. 주말엔 쉰다. 회사 망해도 이직하면 된다. 나는 퇴근 개념이 없다. 주말도 일한다. 회사 망하면 끝이다. 근데 월급은 4분의 1이다. 이게 맞나. 부모님은 "졸업은 언제 하냐" 물으신다. 휴학 4학기째다. 복학 계획 없다. 근데 말씀드리면 걱정하신다. "친구들은 다 취업했다며?" "네 그렇죠." "너도 졸업하고 취업하면 안 되겠니?" 취업하면 편하다. 월급 받고 퇴근하고 주말 쉬고. 친구들한테 월급 줄 일도 없고. 혼자 고민할 일도 없고. 근데 안 된다. 여기까지 왔는데. 1년 반 했는데. 투자금 받았는데. 팀원들 믿고 있는데. 그만두면 나는 뭐가 되는 거지. 25살 대표. 무겁다. 친구와 대표 사이 민준이가 말했다. "형 요즘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예민하다. 맞다. 나도 안다. "미안 요즘 스트레스가 좀 있어서." "형이 너무 혼자 짊어지려고 하는 것 같아. 우리도 같이하는 건데." 같이한다. 맞다. 근데 느낌이 다르다. 민준이는 직원이다. 월급 받는다. 퇴근한다. 나는 대표다. 월급 준다. 못 퇴근한다. 이 차이를 민준이는 모른다. 아니 알 수 없다. 대표 해보지 않았으니까. "그래 미안하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ㅇㅇ 우리 그냥 편하게 하자. 친구잖아." 친구다. 맞다. 근데 나는 네 월급 주는 사람이다. 네가 여행 가는 동안 일하는 사람이다. 회사 망하면 너한테 미안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친구인가. 민준이는 악의가 없다. 게으른 것도 아니다. 그냥 우리 회사 시스템이 자유로운 거다. 내가 만든 시스템이다. 근데 나는 그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표라서. 친구와 대표 사이. 둘 다이면서 둘 다 아닌 느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느낌. 혼자다. 변하는 관계 6개월 전만 해도 민준이랑 매일 붙어 다녔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코딩하고 같이 게임하고. "야 이거 봐 ㅋㅋ" 하면서 밈 공유하고. 요즘은 단톡방에서만 얘기한다. "내일 몇 시 미팅이에요?" 존댓말한다. 대표한테 존댓말하는 거다. 친구한테 하는 게 아니다. 만나도 회의한다. "이번 주 목표가 뭐야?" 내가 묻는다. 친구한테 물을 질문이 아니다. 대표가 직원한테 물을 질문이다. "형 요즘 우리 왜 이래?" 수현이가 물었다. 맞다. 우리 왜 이러지. "뭐가?" "그냥 예전이랑 다른 것 같아. 재미없어." 재미없다. 맞다. 요즘 재미없다. "그래? 미안 내가 너무 일 얘기만 하나 봐." "아니 그게 아니라 뭔가 거리감이 느껴져." 거리감. 정확한 표현이다. 월급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거리감. 걱정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거리감. 책임지는 사람과 안 지는 사람의 거리감. "그냥 기분 탓 아닐까 ㅋㅋ" 웃어넘겼다. 근데 기분 탓이 아니다. 우리 변했다. 내가 변했다. 아니 역할이 변했다. 친구 사이에 고용 관계가 끼어들었다. 월급이 끼어들었다. 책임이 끼어들었다. 돌아갈 수 있을까. 예전으로. 모르겠다. 답이 없는 질문 새벽 3시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 본다. 질문이 맴돈다. 친구를 직원으로 대해야 하나. 직원을 친구로 대해야 하나. 둘 다 하면 안 되나. 둘 다 하면 이상한가. 대표는 외로워야 하나. 친구들이랑 창업하면 안 되는 건가. 다른 창업가들은 어떻게 하지. 궁금하다. 검색한다. "친구와 창업" "공동 창업자 갈등" "팀원 관리" 글들 읽는다. 비슷한 고민들이다. 근데 답은 다 다르다. "명확한 역할 분담이 필요합니다." "정기적인 1:1 미팅을 하세요." "친구와 일은 분리하세요." 분리한다. 어떻게. 월급 주는데 어떻게 분리해. 댓글 읽는다. "저도 친구랑 했다가 망했어요 ㅠㅠ" "친구는 친구로 남겨두세요." "결국 돈 문제로 갈라섰습니다." 무섭다. 우리도 그렇게 될까. 민준이가 문자 보낸다. 새벽 3시에. "형 자요? 나 잠 안 와서 그런데 내일 점심 같이 먹을래요? 회의 말고 그냥 밥." 그냥 밥. 오랜만이다. "ㅇㅇ 좋아 몇 시?" "12시 어때요?" "오키" 핸드폰 내려놓는다. 민준이도 뭔가 느낀 건가. 우리 관계가 이상하다는 걸. 내일 점심 때 얘기해야 하나. "야 우리 요즘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근데 말하면 어떻게 되지. 해결이 될까. 아니면 더 어색해질까. 모르겠다. 새벽 4시가 됐다.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온다. 내일 민준이를 만나면 나는 뭘까. 친구를 만나는 걸까. 직원을 만나는 걸까. 둘 다인 것 같으면서 둘 다 아닌 것 같다. 25살 대표. 이런 거구나.친구인데 대표고, 대표인데 친구다. 답은 아직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