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지 않은 마음

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지 않은 마음

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지 않은 마음 런웨이 4개월 통장 잔고 확인했다. 회사 계좌 3800만원. 직원 4명 월급 각 100만원. 사무실비 없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4개월이면 끝이다.투자 미팅 잡혔다. 다음 주 화요일. 시리즈 A까지는 아니고 브릿지 투자. 5000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다. 투자자는 50대 남성. 지난번 미팅 때 "아직 어리시네요" 했던 그 사람이다. 피칭 자료 다시 고쳤다. 트랙션 강조. MAU 2만, MoM 25% 성장. 숫자로만 보면 나쁘지 않다. 근데 수익은 아직이다. 그게 문제다. 팀원들은 모른다. 런웨이 애기. 나만 안다. 대표니까. 26살 대표. 부모님 통화 어제 엄마한테 전화 왔다. 한 달 만이다. "밥은 먹냐" "학교는 언제 가냐" 똑같은 질문이다. "창업 잘 되냐" 물어봤다. "네, 잘 돼요" 했다. 거짓말이다. 잘 되는 건 아니다. 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버티는 중이다."돈은 있냐" 이 질문이 제일 무섭다. "네, 있어요" 했다. 또 거짓말이다. 개인 통장은 180만원이다. 이번 달 카드값 나가면 50만원 남는다. 부모님은 대전에 산다. 아버지는 공무원 퇴직하셨다. 연금 나온다. 200만원 정도. 어머니는 파트타임으로 일하신다. 한 달에 80만원 정도 버신다. 그 돈으로 두 분이 사신다. 여유 없다. 나도 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말했다. "힘들면 얘기해" "돈은 걱정 마" 그 말에 가슴이 아팠다. 동기들 인스타 오늘 대학 동기 인스타 봤다. 김민수. 쟤 네이버 입사했다. 초봉 5500만원이다. 사진에는 신입 명찰이랑 환영 화환이 있었다. 댓글 50개 넘게 달렸다. "축하해" "부럽다" "회식 쏴라" 나도 축하 이모지 눌렀다. 진심이다. 근데 복잡하다.쟤는 이제 매달 월급 450만원 받는다. 세금 떼면 350만원? 나는 회사 돈에서 내 월급 안 뺀다. 팀원들 주기도 빠듯하다. 쟤는 점심 회사 구내식당에서 먹는다. 저녁도 야근하면 나온다. 나는 편의점 도시락이다. 2500원짜리로 두 끼 때운다. 쟤는 주말에 쉰다. 나는 주말이 없다. 토요일도 코딩한다. 일요일도 데이터 본다. 쟤는 연차 15일이다. 나는 연차 개념이 없다. 부럽나? 모르겠다. 솔직히 조금 부럽다. 아니 많이 부럽다. 만약 투자 안 되면 시뮬레이션 돌려봤다. 투자 안 되면 어떻게 되나. 4개월 후 통장 바닥난다. 팀원들 월급 못 준다. 두 명은 자를 수밖에 없다. 개발자 1명, 디자이너 1명만 남긴다. 월급도 50만원으로 줄인다. 그렇게 해도 2개월이다. 그 다음은? 서비스 접는다. 회사 정리한다. 나는 복학한다. 25학번 1학기. 27살에 졸업이다. 취업 준비한다. 28살에 입사한다. 동기들보다 3년 늦는다. 아니면. 부모님한테 손 벌린다. 5000만원만 빌린다. 아니 3000만원만. 아니 1000만원만이라도. 그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힌다. 지난번 명절 설날 때 집에 갔었다. 작년 2월이다. 창업한 지 8개월 됐을 때다. 친척들이 모였다. 큰아버지가 물어봤다. "창업했다며? 돈 벌어?" 대답 못 했다. 아버지가 대신 말했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 작은아버지가 웃었다. "요즘 애들 다 창업한다더라" "근데 성공하는 애들은 몇 명 안 되지" 술 취한 목소리였다. 어머니 표정이 굳었다. 나는 화장실 갔다. 10분 있다가 나왔다. 저녁 먹고 아버지랑 산책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힘들면 그만둬도 돼" "학교 마치고 취업해도 늦지 않아" "아니에요" 했다. "조금만 더 해볼게요" 아버지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게 더 미안했다. 팀원들 월급날 매달 25일이 월급날이다. 100만원씩 보낸다. 송금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김준호. 개발자. 같은 과 동기다. 쟤도 휴학 중이다. 부모님이 사업하신다. 여유 있는 집이다. 100만원 받아도 용돈 수준이다. 근데 매달 고맙다고 한다. 박서연. 디자이너. 동아리 후배다. 24살이다. 집은 서울이다. 부모님이 맞벌이하신다. 쟤는 이 100만원으로 산다. 교통비, 식비, 통신비 다 여기서 나간다. 이재훈. 기획자. 학교 선배다. 28살이다. 전 직장 다니다가 왔다. 쟤는 전 직장에서 300만원 받았다. 지금은 100만원이다. 그래도 같이한다. "형 믿고 왔어요" 했다. 최유진. 마케터. 창업 동아리 동기다. 25살이다. 집은 부산이다. 자취한다. 월세 40만원이다. 100만원 받으면 60만원 남는다. 그걸로 산다. 이 사람들 월급 못 주면 어떻게 되나. 생각만 해도 미치겠다. 투자자 미팅 시뮬레이션 다음 주 화요일 준비한다. 피칭 자료 20페이지다. 노션에 정리했다. 예상 질문 리스트 만들었다. "수익화 계획은?" "경쟁사 대비 차별점은?" "팀 평균 나이가 어리지 않나?" "학교는 안 가나?"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건가?" 답변 준비했다. 외웠다. 거울 보고 연습했다. 표정 관리했다. 목소리 톤 조절했다. 정장 입을까 고민했다. 26살이 정장 입으면 코스프레 같다. 그냥 후드 입고 가기로 했다. 깔끔한 걸로. 검은색. 투자 받아야 한다. 받아야 한다. 받아야만 한다. 부모님한테 손 벌리고 싶지 않다. 아버지 문자 어제 밤 아버지한테 문자 왔다. 새벽 1시였다. "영준아 자니" "힘들면 얘기해" "아빠가 도와줄게" 읽었다. 답장 못 했다. 아버지는 퇴직금 받았다. 3억 정도 된다고 들었다. 거기서 빚 갚고, 집 고치고, 지금 1억 정도 남았을 거다. 그게 노후 자금이다. 두 분이 20년 쓸 돈이다. 거기 손대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나는 26살이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27살에 복학해도 된다. 28살에 취업해도 된다. 30살에 다시 창업해도 된다. 근데 아버지는 다르다. 64살이다. 실패하면 끝이다. 회복 불가능하다. 내가 편하자고 부모님 노후 자금 쓸 수는 없다. 새벽 3시에 답장 보냈다. "안 자요 ㅋㅋ 코딩 중"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투자 미팅 있어요 잘 될 거예요" 거짓말은 아니다. 투자 미팅은 있다. 잘 될지는 모른다. 카페에서 지금 카페에 있다. 홍대 어딘가다. 아메리카노 4500원짜리 시켰다. 비싸다. 근데 와이파이 빠르고 콘센트 있다. 옆 테이블에 대학생들 있다. 과제하는 것 같다. "이거 내일까지인데 어떻게 해" "교수님한테 메일 보내볼까" 웃으면서 얘기한다. 저 나이 때가 그리워진다. 걱정이 과제뿐이었던 시절. 학점이 제일 큰 고민이었던 때. 지금은 다르다. 걱정이 생존이다. 고민이 현금흐름이다. 노트북 열었다. 피칭 자료 다시 본다. 숫자 확인한다. 문장 다듬는다. 다음 주 화요일. 5일 남았다. 투자 받으면 된다. 부모님 돈 안 써도 된다. 팀원들 월급 줄 수 있다. 6개월 더 버틸 수 있다. 투자 안 되면? 생각하기 싫다. 아메리카노 마신다. 식었다. 쓰다.손 벌리는 것보다 무너지는 게 더 무섭다. 근데 손 벌리면 진짜 무너질 것 같다.

창업 동아리만이 유일한 네트워크라는 불안감

창업 동아리만이 유일한 네트워크라는 불안감

창업 동아리가 내 전부라는 게 무섭다 오늘도 같은 사람들오늘 미팅 3개 했다. 다 같은 사람들이다. 아침엔 팀 미팅. 저녁엔 창업 동아리 선배. 밤엔 같은 과 후배. 결국 다 아는 사람들. 다 20대 초중반. 다 학생이거나 막 졸업한 애들. 투자사 대표 만나러 가면서 생각했다. 내 명함함에 있는 명함이 몇 개나 될까. 세어봤다. 12장. 그 중에 제대로 된 투자자나 사업가는 3명. 나머지는 다 동아리 사람들이다. VC 대표님이 물었다. "다른 투자사는 어디 만나보셨어요?"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아는 투자자가 없다. 엔젤 투자 받을 때도 선배 소개였다. "네트워크 넓히시면서 하세요." 조언을 들었다. 어떻게? 어디서? 누구를? 사회생활을 안 해봤다는 게대학교 3학년 때 창업했다. 인턴도 안 해봤다. 알바는 편의점이랑 과외 전부다. 명함 주고받는 법도 몰랐다. 엔젤 투자자 만날 때 명함을 한 손으로 받았다가 혼났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이메일 쓰는 것도 어렵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해야 하나 "OO님"으로 시작해야 하나. 팀원들한테 물어보면 얘네도 모른다. 다들 비슷한 처지다. 링크드인 켜봤다. 연결된 사람 78명. 다 대학 동기들이다. 투자자나 사업가는 손에 꼽는다. 프로필 사진도 어정쩡하다. 정장은 없고 후드티 입고 찍은 거. 동기 녀석이 대기업 입사했다. 인스타에 명함 올렸다. "OO그룹 신입사원 OOO입니다." 댓글에 부장님들이 응원 메시지 달았다. 부럽다. 얘는 이미 회사 네트워크에 들어갔다. 나는? 창업 동아리 단톡방이 전부다. 투자 라운드는 어떻게런웨이 4개월 남았다. 시리즈 A 준비해야 한다.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모른다는 거다. 투자사 리스트는 구글링하면 나온다. 근데 그 다음이 막막하다. 콜드메일 보내야 하나. IR 자료는 어떻게 만들지.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책정하지. 물어볼 사람이 없다. 선배한테 물어봤다. "나도 Pre-A까지밖에 안 받아봤어." 그 선배도 학생 때 창업했다. 결국 비슷한 처지다. 투자사 홈페이지 들어가면 "IR 문의" 폼이 있다. 거기에 사업계획서 넣고 보내면 끝인가? 그게 다인가?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대표들 모임 같은 데 가보고 싶다. 근데 어떻게 가지. 초대받아야 하나. 회비 내면 되나. 검색해도 잘 안 나온다. 링크드인에서 투자자들한테 메시지 보냈다. 3명. 2명은 읽씹. 1명은 "좋은 기회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동 답장. 이게 맞는 방법인가. 모르겠다. 동아리 선배가 말했다 "네트워킹 이벤트 가봐." 가봤다. 스타트업 밋업. 50명 정도 모였다. 대표들이 많았다. 명함 돌리는데 다들 능숙하다. "아 OO 대표님" "저번에 OO에서 뵀죠" 이미 다 아는 사이다. 나는 구석에서 맥주 마셔댔다. 말 걸기가 어렵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저는 AI 숏폼 서비스 하는데요" 이렇게? 촌스럽다. 한 명이 다가왔다. "어떤 일 하세요?" "AI 기반 숏폼 편집 서비스요." "아 몇 년차세요?" "1년 반이요." "학생이세요?" "...네." 대화가 끊겼다. "열심히 하세요" 하고 가버렸다.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여기 사람들은 이미 다 연결돼 있다. 나는 외부인이다.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팀 전부 20대 초중반이다. 다 학생이거나 갓 졸업한 애들. 개발자 2명, 디자이너 1명, 마케터 1명. 전부 나랑 동아리 출신이다. 실력은 있다. 근데 경험은 없다. 다들 이게 첫 회사다. 투자 받으려면 팀 소개가 중요하다고 한다. "저희 개발자는 전 OO에서 5년..." 이런 거. 우리는? "전 OO대학교 컴공과 4학년입니다" 이게 다다. 요즘 팀원들 얼굴이 어둡다. 동기들 취업 소식에 흔들리는 것 같다. 어제 개발자 한 명이 말했다. "형 솔직히 우리 회사 망하면 어떡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나도 모르겠어. 근데 해보는 거지." 이게 전부였다. 밤에 혼자 생각했다. 내가 팀을 이끌 자격이 있나. 나도 경험 없는데. 부모님은 모른다 한 달에 한 번 전화한다. "요즘 어떠니" "잘 지내요." 투자 받는 얘기 하면 모르신다. "투자? 돈 빌리는 거야?" "아니요 주식을 주고..." "그게 뭐야." 설명하다가 포기했다. 이해 못 하신다. "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월급 받잖아" "저도 나중에 더 많이 벌어요" "언제? 졸업은 언제 하고?" 전화 끊고 나면 허무하다. 세대 차이인가. 아니면 내가 설명을 못 하는 건가.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평생 한 직장. 어머니는 주부. 창업은 남의 나라 얘기다. "돈 필요하면 말해" 이 말이 제일 싫다. 안 받고 싶다. 받으면 진 것 같다. 근데 통장 보면 100만원 남았다. 다음 달 팀원들 월급 어떻게 주지. 성공한 애들 보면 뉴스에 나온다. "25세 대표, 시리즈 B 100억 투자 유치." 인스타 보면 나온다. 창업 선배가 데모데이에서 상 받았다. 링크드인에도 나온다. "OO 스타트업, 글로벌 VC로부터..." 부럽다. 질투난다. 초조하다. 얘네는 어떻게 한 거지. 나랑 뭐가 다를까. 프로필 들어가서 본다. 경력 칸이 길다. "전 OO 인턴" "OO 프로그램 수료" "OO 액셀러레이터". 나는? "OO대학교 재학 중" "창업 동아리 회장" 끝. 네트워크가 다르다. 멘토가 있다. 투자자들을 안다. 나는 혼자다. 아니다. 창업 동아리 애들이랑만 있다. 새벽 3시에 이런 생각한다. 그리고 못 잔다. 결국 아는 사람들 오늘도 카톡 확인했다. 30개 알림. 다 같은 단톡방이다. 창업 동아리 방. OB 방. 학교 과방. 전부 같은 사람들이다. 새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걸 안다. 근데 어떻게 만나지. 행사 가면 어색하다. 말 걸기 부담스럽다. 명함 주고받아도 연락 안 한다. 결국 편한 사람들한테 돌아온다. 같은 나이. 같은 고민. 같은 불안. 팀원이 말했다. "형 우리 너무 갇혀 있는 거 아냐." 맞는 말이다. "나가보자" 라고 했다. 어디로? 어떻게? 둘 다 모른다. 투자자를 만날 자격 VC 파트너가 물었다. "멘토 있으세요?" "창업 동아리 선배요." "그 분은 어느 정도 규모 회사 운영하시나요?" "...시리즈 A 받으셨어요." 표정이 미묘했다. "음... 좀 더 시니어한 분들과..." 알겠다. 내 네트워크가 얕다는 얘기다. "다른 투자사는 어디 만나보셨어요?" 또 이 질문. "아직 많이는..." "이 분야 전문 투자자 아세요?" "검색해봤는데..." 대화가 안 이어진다. 준비가 안 됐다는 티가 난다. 집에 오면서 검색했다. "VC 파트너 연결 방법" "투자자 네트워킹 방법". 나오는 답변들. "업계 행사 참석" "소개 받기" "실적으로 증명". 결국 사람을 알아야 한다. 소개를 받아야 한다. 근데 소개해줄 사람이 없다. 창업 동아리 선배한테 부탁할까. 근데 그 선배도 네트워크가 넓지 않다. 루프다. 계속 같은 원 안에서 돈다. 이게 현실이다 27살에 창업한 선배가 있다. 지금 30살. 시리즈 B 받았다. 그 형이 말했다. "네트워크는 시간이 필요해. 나도 2년 걸렸어." 2년.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런웨이는 4개월이다. 시리즈 A는 최소 6개월 걸린다고 한다. 브릿지 투자 받아야 한다. 근데 브릿지 투자자도 모른다. 창업 동아리 교수님한테 물어봤다. "제자 중에 투자하시는 분 없으세요?" "글쎄... 한번 알아볼게." 일주일 지났다. 답 없다. 현실이 이렇다. 나는 사회생활을 안 해봤다. 네트워크가 없다. 혼자서 투자 라운드를 돌아야 한다. 가능한가? 모르겠다. 팀원들 보면 미안하다. 얘네 미래도 내 손에 달렸다. 무섭다.결국 아는 사람들한테만 물어보고 있다. 이게 한계다.

4명이 함께하는 스타트업, 관계 관리가 가장 어려워

4명이 함께하는 스타트업, 관계 관리가 가장 어려워

4명이 함께하는 스타트업, 관계 관리가 가장 어려워 오늘도 말 한마디 조심했다 카페에서 팀 회의했다. 1시간 반. 서비스 방향성 얘기하다가 민수가 말했다. "형, 근데 이거 정말 되는 거 맞아요?" 순간 멈췄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될 거야"라고 하면 무책임해 보이고. "모르겠어"라고 하면 팀이 무너질 것 같고. 결국 "우리가 해봐야지 뭐"라고 얼버무렸다. 민수 표정이 애매했다. 확신 찬 리더십을 원하는 건지. 솔직함을 원하는 건지. 26살 대표한테 뭘 기대하는 건지 모르겠다. 회의 끝나고 민수한테 따로 물어봤다. "너 요즘 힘들어?" "아니요, 괜찮아요." 아니다. 목소리가 다르다. 그냥 넘어갔다. 더 파고들면 어색해진다.친구 같은데 친구는 아니다 우리 팀 4명. 나 포함해서. 다 대학 동기거나 과 선배다. 예진이는 디자이너. 민수는 백엔드. 상현이는 마케팅. 나는 프론트엔드 겸 대표. 창업 전엔 그냥 친구였다. 술 마시고 게임하고 대학 과제 같이 했다. 지금도 저녁 먹으면서 농담한다. 예전처럼. 근데 다르다. 분명히 다르다. 예진이가 디자인 수정 요청하면 "이거 다시 해줄래?"라고 못 한다. "이 부분 피드백 좀 주고 싶은데"라고 돌려 말한다. 상현이가 마케팅 예산 쓴 걸로 결과가 안 나오면 직접 말 못 한다. 팀 회의에서 "우리 예산이 한정적이니까"라고 에둘러 말한다. 친구였으면 "야 이거 뭐야"라고 했다. 지금은 못 한다. 내가 월급 주는 사람이니까. 아니, 월급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100만원씩 주니까.성과 얘기가 제일 무섭다 지난주 투자자 미팅 있었다. 망했다. "팀 역량이 보이지 않아요." 그 말이 계속 맴돈다. 사실 맞는 말이다. 우리 서비스 MAU 2만인데 3개월째 정체다. 예진이 디자인은 예쁜데 UX 개선이 느리다. 상현이 마케팅은 열심히 하는데 전환율이 안 나온다. 민수 코드는 깔끔한데 속도 최적화가 부족하다. 이걸 어떻게 말하지. "예진아, 너 디자인 속도 좀 올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 상처받는다. 예진이는 밤새워 작업한다. 나도 안다. 근데 결과가 중요하다. 투자자는 과정 안 본다. "상현아, 마케팅 성과가 좀..." 이것도 못 한다. 상현이는 우리 중에 제일 나이 많다. 28살. 취업 포기하고 나랑 했다. 책임감 느껴진다. 그래서 팀 회의에서 "우리 모두 더 분발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한다. 추상적으로. 아무도 안 찔리게. 근데 그럼 아무것도 안 바뀐다. 어제 예진이한테 직접 말했다. "예진아, 이번 UI 작업 언제까지 가능해?" "이번 주는 힘들 것 같아요." "우리 데모데이가 2주 남았는데..." "알아요. 근데 지금도 밤 3시까지 하는데요." 말을 멈췄다. 더 밀어붙이면 관계가 깨진다. 그냥 "알았어, 최대한 해보자"라고 했다. 밤에 예진이한테 카톡 왔다. "형, 제가 부족한 거 알아요. 죄송해요." 가슴이 아팠다. 내가 뭘 하고 있나.월급이 제일 미안하다 이번 달 월급 날 다가온다. 통장에 500만원 남았다. 4명 월급 400만원. 사무실비, 서버비 빼면 마이너스다. 월급 100만원씩 준다. 친구들이 취업하면 신입도 3000만원은 받는다. 우리는 연봉 1200만원이다. 4대보험도 없다. 퇴직금도 없다. 매달 송금할 때마다 메시지 쓴다. "이번 달도 고생했어. 조금만 더 힘내자." 빈말 같다. 본인도 믿지 않는 말. 상현이가 농담처럼 말했다. "형, 우리 언제 월급 200 받아요?" "곧. 수익화 되면." "그게 언제인데요?" "...곧." 곧이 언제인지 나도 모른다. 투자 받으면? 그것도 확실하지 않다. 이번 IR 피칭 3곳 다 떨어졌다. 민수 부모님이 "제대로 된 회사 다녀라"라고 하신다는 얘기 들었다. 민수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눈빛이 달랐다. "괜찮아요, 형. 저 여기 좋아요." 근데 정말 괜찮을까. 예진이는 카드값 밀렸다고 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짜다. "형, 우리 회사 법인카드 없죠?" "...미안." 내 통장도 빈다. 부모님한테 손 벌리고 싶지 않다. 근데 이번 달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대전 계신 부모님한테 전화해야 한다. "아빠, 나..." 이 말이 목에서 안 나온다. 나이가 계속 걸린다 투자자 미팅에서 물어봤다. "대표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26살입니다." "아, 학생이시네요." "휴학 중입니다." "졸업은 언제 하시고요?" "...미정입니다." 표정이 바뀌었다. 아. 또 이거다. "젊은 게 장점이긴 한데, 경험이 좀..." 말을 흐렸다. 다 안다. '어린애들 장난'이라고 생각한다는 거. 팀원들 앞에서는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 Z세대가 타겟이잖아. 우리가 제일 잘 알아." 근데 혼자 있으면 불안하다. 정말 나한테 이걸 맡겨도 되나. 예진이가 물어봤다. "형, 우리 안 될 것 같으면 말해줘요. 저도 준비 있어야 하잖아요." "뭔 소리야, 될 거야." "근데 형도 불안해 보여요." 들켰다. 숨기려고 했는데. "나이가 어려서 걱정돼요?" 상현이가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저는 솔직히 그래요. 형이 26살인 게. 근데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말을 멈췄다. 알아. 다 알아. 나도 내가 어리다고 생각한다. 경험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인정하면 팀이 무너진다. "우리 나이도 다 20대 중반이잖아. 함께 배우는 거지." 이렇게 말했다. 설득력 없어 보였다. 대표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월요일 아침. 아니, 낮 1시. 일어났다. 민수한테 카톡 와 있다. "형, 오늘 몇 시에 모여요?" 10시에 온 메시지다. "2시쯤?" 답장 보냈다. "네." 짧다. 기분 나쁜 짧음. 카페 도착했다. 2시 10분. 다들 와 있다. 노트북 켜고 작업 중이다. "미안, 늦었어." "괜찮아요." 괜찮지 않은 목소리다. 예전에는 다 같이 늦게 왔다. 1시, 2시. 근데 요즘 팀원들은 11시쯤 온다. 나만 늦는다. 대표가 제일 늦는다. "우리 출근 시간 정할까?" 상현이가 말했다. "그래, 좋지. 몇 시?" "11시요?" "11시." 근데 나는 11시에 못 일어난다. 새벽 4시에 자니까. "형은 개발자니까 밤에 집중하는 거 이해해요. 근데 우리는..." 예진이가 말했다. "우리는?" "일과가 있으면 좋겠어요. 뭔가 회사 같은 느낌?" 회사. 맞다. 우리는 회사다. 친구 모임 아니다. 스터디 그룹 아니다. 근데 나는 대표처럼 안 행동한다. "알았어. 내가 맞춰볼게." 거짓말이다. 못 맞춘다. 지금까지도 못 맞췄다. 저녁 회의에서 민수가 말했다. "형, 우리 제대로 된 사무실 구할 생각 없어요? 카페에서만 하면..." "돈이 없어서." "그래도..." "지금은 안 돼. 나중에." 나중에. 항상 나중에다. 월급도 나중에 올려주고. 사무실도 나중에 구하고. 복지도 나중에 만들고. 근데 나중에가 언제인지 모른다. 대표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비전 제시? 나도 내일이 불안하다. 의사결정? 혼자 결정하면 독단이라고 하고 물어보면 우유부단하다고 한다. 책임? 다 내 책임이다. 망하면 내 잘못이다. 그게 무섭다. 동기들 인스타가 제일 독이다 어제 대학 동기 인스타 봤다. 입사 인증샷. "네이버 입사했습니다🎉" 좋아요 300개. 축하 댓글 50개. 연봉 5000만원은 받을 거다. 우리는 같은 학번이다. 같은 수업 들었다. 근데 걔는 네이버 다니고 나는 런웨이 4개월 남은 스타트업 대표다. 스크롤 내렸다. 또 다른 동기. "카카오 최종 합격!" 부럽다. 솔직히 부럽다. 내가 뭐 하고 있나. 26살에 친구들 월급 100만원씩 주면서 희망 고문하고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라고 말하면서 본인도 확신 없다. 상현이가 말했다. "형, 저희 동기들 다 취업했어요. 저만 이러고 있어요." "곧 된다고." "곧이 언제요?" 대답 못 했다. 예진이 카톡 프로필 사진 봤다. 여행 사진이다. 제주도. 언제 갔다 왔지? 우리 팀은 휴가도 제대로 못 쓴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아니, 시간은 있다. 근데 쉬면 안 될 것 같다. 매일이 급하다. 부모님한테 전화 왔다. "취업한 친구들 보니까 어때?" "괜찮아요." "넌 언제 졸업하고?" "나중에요." "나중에가 언제야. 네 친구들은 다 직장 다니는데." 끊었다. 혼자 생각했다. 내가 잘못 선택한 건가. 친구들처럼 취업할 걸. 월급 안정적으로 받고 주말에 쉬고. 근데 그럼 평생 후회할 것 같다. 해보지도 않고. 근데 지금도 후회한다. 팀원들한테 미안하다. 나 때문에 얘들 인생이 꼬이는 건 아닐까. 책임감이 너무 무겁다 새벽 3시. 잠이 안 온다. 내일 민수 생일이다. 케이크라도 사줘야 하나. 5만원. 통장에서 5만원이 아깝다. 이게 말이 되나. 예진이가 감기 걸렸다고 했다. "형, 오늘 집에서 작업해도 돼요?" "그래, 푹 쉬어." "근데 데드라인이..." "괜찮아, 건강이 먼저지." 거짓말이다. 데드라인 미루면 안 된다. 투자 미팅이 이번 주다. 근데 억지로 나오라고 할 수 없다. 내가 4대보험도 안 해주면서. 상현이 부모님이 병원 입원하셨다고 했다. "형, 내일 하루만 쉬어도 될까요?" "당연하지. 가봐야지." "죄송해요." "뭔 죄송해. 당연한 거지." 근데 속으로는 불안하다. 일정이 밀린다. 마케팅 캠페인 런칭이 이번 주인데. 내가 대신 할 수 있나. 모른다. 상현이만 할 수 있다. 이게 회사 맞나. 아파도 미안해하고. 가족 일 있어도 눈치 보고. 내가 만든 회사가 이런 곳이다. 창업할 땐 '수평적 문화'라고 했다. 지금은 '미안한 문화'다. 민수가 이직 제안 받았다고 했다. "형한테 먼저 말하고 싶어서요. 네이버에서 연락 왔어요." "가고 싶어?" "...모르겠어요. 근데 연봉이..." 말을 멈췄다. 알아. 우리 12배는 줄 거다. "가." "형?" "가. 네가 결정해. 난 뭐라고 안 할게." "근데 형은..." "나는 괜찮아. 네 인생이 중요하지." 겉으론 쿨한 척했다. 속으론 무너졌다. 민수 없으면 서비스 못 돌린다. 나 혼자 백엔드 다 할 수 없다. 근데 붙잡을 수 없다. 내가 뭘 줄 수 있나. 밤에 민수한테 카톡 왔다. "형, 저 안 갈게요. 우리 끝까지 해봐요." "너 결정한 거 해. 나 신경 쓰지 마." "아니요. 저도 믿어요. 우리가 만드는 거." 고맙다. 근데 미안하다. 내가 민수 인생 책임질 수 있나. 없다. 근데 민수는 날 믿는다. 이 무게가 너무 무겁다. 그래도 아직은 오늘 아침. 아니, 점심. 카페에서 모였다. 다들 피곤해 보인다. 나도 피곤하다. "오늘 뭐부터 할까?" "데모 준비요." "그래, 데모." 2주 후 데모데이다. 투자자 50명 앞에서 10분 발표한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투자 못 받으면 3개월 후 끝이다. "우리 할 수 있을까?" 예진이가 물었다. "모르겠어. 근데 해야지." "만약 안 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점심 먹으면서 예전 얘기 나왔다. 창업 처음 할 때. "우리 유니콘 만들자!" 그때는 다 웃었다. 지금은 아무도 안 웃는다. 유니콘은커녕 생존이 목표다. "그래도 우리 여기까지 왔잖아." 상현이가 말했다. "맞아, 망하지 않고." "긍정적이네." "뭐, 어쨌든." MAU 2만. 적은 숫자 아니다. 2만 명이 우리 서비스 쓴다. 매일 로그인한다. 누군가는 우리가 필요하다. "다음 달에 프리미엄 기능 오픈하면 어떨까?" 민수가 말했다. "수익화?" "응. 해봐야지." "근데 유저들이 돈 낼까?" "모르지. 근데 안 하면 계속 모르잖아." 맞다. 해봐야 안다. 저녁 회의 끝나고 맥주 마셨다. 편의점 맥주 4캔에 만원. 회식비다. 치킨은 못 시킨다. "형, 우리 언제 성공해요?" 예진이가 물었다. "곧." "또 곧이네." "이번엔 진짜야." "맨날 진짜래." 다들 웃었다. 피곤한 웃음이다. 근데 포기한 웃음은 아니다. 집에 돌아왔다. 새벽 1시. 노트북 켰다. 코드 짜야 한다. 내일 배포 목표다. 카톡 왔다. 상현이다. "형, 자기 전에. 오늘 고생했어." "너도." "우리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근데 해보는 거지." "그래, 해보는 거지." 코드 짰다. 3시간. 배포했다. 에러 없다. 작은 성취다. 내일 또 카페 간다. 팀 만난다. 회의한다. 고민한다. 부딪친다. 미안해한다. 그래도 계속한다.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근데 아직은 포기 안 한다. 팀원들도 아직 있다. 그럼 나도 계속한다. 26살. 어린 나이다. 경험 없다. 돈도 없다. 근데 시간은 있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게 20대 아닌가. 아닐 수도 있다. 근데 믿고 싶다.관계 관리가 제일 어렵다는 게 웃긴 일이다. 4명밖에 안 되는데.

복학 미정 - 선택이 아닌 상황

복학 미정 - 선택이 아닌 상황

복학 미정 복학 신청 기간이 지났다. 알람 꺼버렸다. 어차피 돌아가도 뭐 하나. 4학년 1학기 수업 듣고 있을 시간에 투자 미팅 하나 더 잡는 게 낫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새벽에는 학교 포털 들어가 본다. 동기들 수강신청 내역 보면서. "저건 꿀강이었는데" 하면서.선택이 아니었다는 핑계 "선택했잖아" 라는 말이 제일 싫다. 선택한 게 맞긴 한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 투자 받았을 때. 팀원들한테 "너희 믿고 휴학한다" 했을 때. 그때는 6개월이면 될 줄 알았다. 1년 안에 시리즈A 받고. 복학해서 '창업한 선배' 로 캠퍼스 걸어다니는 상상. 지금 1년 6개월째다. 투자자들은 "트랙션이 애매하네요" 한다. MAU 2만이 적은 건지 많은 건지. 기준이 뭔지. 5만 되면 돈 주나. 10만 되면 주나. 부모님은 "그래도 졸업장은 따놔라" 하신다. 맞는 말이다. 근데 지금 복학하면. 이 1년 6개월이 뭐가 되는데.성공해야만 정당화된다 동기 단톡방에서 누가 입사 소식 올렸다. "축하해ㅋㅋ" 보냈다. 진심이다. 근데 떨린다. 3개월 전에는 "나도 잘 될 거야" 했는데. 이제는 "나는 잘 돼야 한다" 로 바뀌었다. 차이가 크다. 잘 되면. 복학 안 한 것도. 부모님한테 손 벌린 것도. 팀원들한테 월급 제대로 못 준 것도. 다 '과정' 이 된다. 미담이 된다.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았죠" 인터뷰 하는 거다. 근데 안 되면. 그냥 '대학도 제대로 안 나온 애' 가 된다. 친구들 연봉 받을 때 알바 면접 보는 거다. 부모님한테 "그래서 내가 뭐랬냐" 들으면서 편의점 야간 알바 하는 거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성공 아니면 실패. 회색 지대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돌아갈 수 없는 다리 학교 앞 지나갔다. 미팅 장소 가는 길에. 후배들 보였다. MT 가는 건지. 과잠 입고 웃으면서. 누가 술 사냐 얘기하면서. 2년 전 내 모습이다. 근데 이제 못 돌아간다. 물리적으로는 복학하면 되는데. 심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다시 앉아서 전공 수업 듣는다고 쳐. "여러분 이번 과제는요" 하는 거 듣는다고 쳐. 옆에 21살 애가 "형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물어본다고 쳐. 미치겠다. 투자 미팅에서 "저희 MAU가요" 하다가. 월 매출 얘기하다가. 런웨이 계산하다가. 다시 "과제 언제까지죠?" 하는 게. 상상이 안 된다. 다리를 건넜다. 뒤돌아보니까 무너지고 있다. 앞으로 가는 수밖에.정당화의 압박 팀원들한테 미안하다. 얘네들도 휴학했다. 나 믿고. "형이 하면 되지" 하면서. 근데 형도 잘 모른다. 다음 달 월급 어떻게 줄지도 모른다. 시리즈A 언제 받을지도 모른다. 이게 맞는 방향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의 때는 확신 있는 척한다. "이번 분기 목표는요" 하면서. "우리 잘하고 있어" 하면서. 밤에 혼자 있으면 무너진다. 노션에 숫자 정리하면서. 런웨이 4개월. 유저 증가율 정체. 수익화 시점 불명. 실패하면 나 혼자 문제가 아니다. 얘네 인생도 꼬인다. 22살에 휴학해서 스타트업 했다가 망한 애들. 이력서에 뭐라고 쓰나. "대표라서" 책임져야 한다는데. 26살이 무슨 책임을 지나. 성공해야 한다. 정당화해야 한다.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해야 한다. 그게 유일한 길이다. 미정이라는 거짓말 "복학은 미정이에요." 투자자들한테는 이렇게 말한다. "올인하고 있다" 는 뉘앙스. 부모님한테도 이렇게 말한다. "아직 결정 안 했다" 는 뉘앙스. 사실은. 이미 정해졌다.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 가는 수밖에. 미정이 아니라 확정이다. 성공할 때까지. 아니면 완전히 망할 때까지. 중간 하차 없다. 브레이크 없다. 액셀만 있다. 무섭다. 솔직히. 근데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똑같이 할 것 같다. 이게 더 무섭다. 정당화될 그날까지 동기가 연락 왔다. "언제 복학하냐" 고. "미정" 이라고 했다. "잘 되고 있어" 라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애매한 진실이다. 잘 되고 있긴 한데. 느리다. 런웨이는 빠르게 줄어드는데. 성장은 더디다. 근데 멈출 수 없다. 여기서 포기하면. 지난 1년 6개월이 그냥 '방황' 이 된다. 계속 가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복학 미정" 이 "창업으로 인생 바꿨다" 가 된다. 그 날까지. 버틴다.돌아갈 수 없다면. 앞으로 가는 수밖에. 그게 맞든 틀리든.

성공한 젊은 창업가 뉴스를 피할 수 없는 이유

성공한 젊은 창업가 뉴스를 피할 수 없는 이유

성공한 젊은 창업가 뉴스를 피할 수 없는 이유 아침부터 시리즈 A 일어나자마자 폰을 봤다. 습관이다. 뉴스 알림 하나. "OO 대표, 27세에 시리즈 A 200억 유치." 아 씨. 커피도 안 마신 상태에서 이런 걸 보면 하루가 망한다. 알면서도 기사를 눌렀다. 27세. 나보다 한 살 많다. 아니지, 빠른 생일이면 동갑일 수도. 200억. 우리 엔젤 투자 5000만원의 400배다. 계산 왜 했냐.기사를 계속 읽었다. 창업 2년 차. MAU 50만. 월 매출 3억. B2B SaaS. 시장성 어쩌고. 우리는 창업 1년 6개월. MAU 2만. 월 매출 0원. 비교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숫자는 자동으로 계산된다. 머릿속 엑셀이 돌아간다. 우리가 저만큼 가려면? 불가능. 아니 가능할 수도. 근데 언제? 댓글을 봤다. "대단하다", "부럽다", "역시 실력 있으면 나이는 숫자". 나이는 숫자. 맞는 말이다. 근데 투자사 미팅 갈 때마다 느낀다. "어리시네요" 하는 눈빛. 알고리즘이 모든 걸 안다 커피를 마시면서 유튜브를 켰다. 실수였다. 추천 영상 첫 번째. "25세 대표의 창업 성공 스토리." 두 번째. "20대에 회사 매각한 창업가 인터뷰." 세 번째. "대학생 때 시작해서 IPO까지." 알고리즘이 날 너무 잘 안다. 요즘 내가 뭘 찾아봤는지 다 알고 있다. 시리즈 A, 투자 유치, 젊은 창업가. 이런 검색어들. 유튜브는 친절하다. 내가 보고 싶은 것보다 봐야 하는 걸 보여준다. 아니, 보고 싶으면서 보기 싫은 걸 보여준다.클릭했다. 25세 대표. 배경이 멋진 사무실이다. 직원이 30명이래. 창업하고 3년. "처음엔 힘들었죠. 근데 시장이 필요로 하는 걸 만들다 보니." 시장이 필요로 하는 거. 우리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댓글창을 열었다. 또 실수. "저도 창업 준비 중인데 용기 얻었어요", "나이는 핑계였구나". 나이는 핑계. 맞다. 근데 실제로 투자자들은 나이를 본다. 경험을 본다. "사업 경험이 있으세요?" 라고 물을 때 "이게 처음입니다" 라고 하면 끝난다. 링크드인의 축하 행렬 점심 먹으면서 링크드인을 봤다. 이것도 습관. "OO님이 새 직책을 시작했습니다: CEO at △△" "□□님이 소식을 공유했습니다: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알립니다" "◇◇님이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창업 5년, 드디어 IPO 준비" 축하 댓글이 수십 개씩. "축하합니다", "대단하세요", "응원합니다". 나도 댓글을 달았다. "축하드립니다!" 느낌표까지. 진심이다. 진심인데 속은 쓰리다. 우리 링크드인 페이지는 팔로워 120명. 직원들이랑 동아리 선후배들. 게시물 올리면 좋아요 10개. 차이가 너무 크다. 숫자로 보이니까 더 크게 느껴진다.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저녁에 팀원들이랑 회의했다. 치킨 시켜 먹으면서. 막내가 말했다. "형, 이거 봤어요? 28세 대표가 IPO 하려나 봐요." 봤다. 아침에 봤다. "대박이네요. 우리도 열심히 하면 되겠죠?" 열심히 하면. 맞는 말이다. 근데 열심히의 기준이 뭐지. 우리는 안 열심히 하나? 매일 새벽까지 일한다. 주말도 없다. 밥 먹으면서도 서비스 얘기한다. 이게 열심히가 아니면 뭐가 열심히지. 차이는 결과다. 결과가 숫자로 나온다. MAU, 매출, 투자 금액. 숫자가 전부는 아니지만 숫자 없이는 아무것도 증명 못 한다. 집에 왔다. 새벽 2시. 인스타를 열었다. 스토리에 또 누가 올렸다. "시리즈 A 축하 파티." 케이크 사진. 샴페인 터트리는 영상. 우리는 엔젤 투자 받았을 때 치킨 먹었다. 치킨도 좋다. 근데 규모가 다르다. 자극이 연료인 이유 뉴스를 안 보면 되지 않냐고 물으면 거짓말이다. 봐야 한다. 시장이 어디로 가는지. 경쟁사가 뭘 하는지. 투자 트렌드가 어떤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자극받고 싶다. 성공한 젊은 창업가 뉴스를 보면 기분이 나쁘다. 부럽다. 질투난다. 왜 나는 안 되지? 싶다. 근데 그게 연료가 된다. '나도 할 수 있어.' 가 아니라 '나도 해야 해.' 로 바뀐다. 미묘하게 다르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증명하고 싶어서. 나이가 어려도 된다는 걸. 경험 없어도 시장을 읽을 수 있다는 걸. 학교 안 다녀도 뭔가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뉴스를 계속 본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대로 클릭한다. 링크드인에서 축하 댓글 단다.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피하고 싶지도 않다. 200억과 5000만원 사이 투자사 미팅이 내일 있다. 오늘도 기사를 봤다. "29세 대표, 시리즈 B 300억." 29세. 3년 후 내 나이다. PT 자료를 다시 열었다. 우리 강점, 시장 분석, 성장 가능성. 숫자를 고쳤다. MAU 예상치를 높였다. 매출 목표를 수정했다. 현실적이면서도 임팩트 있게. 새벽 4시에 자료를 저장했다. 침대에 누워서 폰을 봤다. 또 뉴스 알림. "26세 창업가, 글로벌 VC 투자 유치." 26세. 동갑. 폰을 엎었다. 눈을 감았다. 내일 미팅 잘하면 된다. 나이는 숫자다. 우리 서비스는 좋다. 시장은 있다. 그렇게 주문을 외우면서 잠들었다.시리즈 A 뉴스는 자극이다. 피할 수 없고, 피하면 안 된다. 이게 내가 버티는 이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