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Dec, 2025
'경험이 중요하죠' - 나이 핑계 대기
'경험이 중요하죠' - 나이 핑계 대기 오늘도 또 들었다 "대표님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투자자 미팅. 30분째 서비스 설명했다. MAU 그래프 보여줬다. 유저 피드백 공유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온 질문이 이거다. "아, 26살입니다."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한다. 표정이 달라진다. '아, 학생이구나' 하는 눈빛. "아직 젊으시네요. 졸업은 하셨나요?" 여기서 내가 하는 말이 정해져 있다. "휴학 중인데요, 저희 세대는... 아니, 요즘은 나이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이 말 한 지 벌써 1년 반. 처음엔 진짜 믿었다. 나이? 그게 뭐 대수냐. 내 서비스가 증명해줄 거다. 근데 요즘은 나도 모르겠다. 이게 설득력이 있나? 아니면 그냥 나이 핑계 대는 건가? 어제 새벽 3시 인스타 피드 넘기다가 멈췄다. 동기 녀석이 올린 글. 대기업 입사 인증샷. "드디어 사회인!" 캡션에 축하 댓글 30개. 나는? 사무실도 없다. 카페에서 일한다. 팀원들 월급 100만원 주는 것도 빠듯하다. "경험이 중요하지." 혼자 중얼거렸다. 근데 누구 설득하는 건지 모르겠다. 투자자? 아니면 나? 새벽 4시에 잤다. 다음 날 오후 1시에 일어났다. 카페 갔다. 노트북 켰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 이게 경험인가? 아니면 그냥 시간 낭비인가?나이 핑계의 진실 솔직히 말하면. 나이 때문에 안 되는 게 있다. 투자자들 말투가 다르다. "대표님" 이라고 부르는데 존댓말 쓰는데, 눈빛은 "학생" 보듯이 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아이디어가 좋아요." 칭찬 같지만 칭찬 아니다. '젊은 친구'라는 말 속에 '경험 없는 애'가 들어있다. 미팅 끝나고 나오면 팀원들이 물어본다. "어땠어?" "글쎄. 검토해본다네." 검토. 돌려 말하는 거다. '나이 좀 더 먹고 와' 라는 뜻이다. 억울하다. 나도 1년 반 했다. 밤새워서 개발했다. 유저 피드백 받고 피봇했다. 이게 경험 아닌가? 근데 그들이 원하는 건 다르다. 대기업 경력. 몇 년. 직급. 프로젝트 규모. 그런 거. 내가 말하는 '경험'이랑 그들이 말하는 '경험'이 다른 거다.그래도 하는 말 "경험이 중요하죠." 이 말 안 할 수가 없다. 왜냐면. 이거라도 안 하면 뭐라고 하냐고. "네, 어려서 부족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끝이다. 투자 안 받는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죠"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다고 한다. 그래서 찾은 게 이 말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적당히 겸손하다. 적당히 자신있다. 적당히 무난하다. 근데 이 말 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나 자신을 변명하는 것 같다. 핑계 대는 것 같다. 26살이 잘못인가? 휴학이 문제인가? 졸업장이 없어서? 억울하다가도, 거울 보면 어려 보인다. 아직 턱수염도 안 난다. 정장 입어도 학생 같다. 미팅 전날 밤. 정장 입어본다. 거울 본다. "설득력 있나?" 혼자 물어본다. 대답 안 한다. 그냥 정장 입고 간다. 부모님 전화 한 달에 한 번. "준아, 학교는 언제 가니?" "엄마, 지금 사업 중요한 시기라서."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 친구들 다 취업했다며?" "엄마, 요즘은 나이보다 경험이 중요해." 또 이 말이다. 부모님한테까지 쓰는 말. "그래, 그래. 근데 너 밥은 먹고 다니니?" 전화 끊고 나면 한숨 나온다. 부모님도 설득 못 하는 말로 투자자를 설득한다고? 웃긴다. 근데 어쩔 수 없다. 다른 말이 없다. 26살. 창업 1년 반. 매출 아직. 졸업 안 함. 이 스펙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다. "경험이 중요합니다." 팀원들 앞에서 더 웃긴 건. 팀원들한테도 이 말 한다. 다들 나랑 비슷한 나이다. 24, 25, 26살. 동아리 후배, 과 친구들. 월급 100만원 받는다. 카페에서 일한다. 주말도 없다. 가끔 물어본다. "형, 우리 이거 되는 거 맞지?" "당연하지. 우리 경험 쌓고 있잖아." 또 이 말이다. 근데 얘들 눈빛이 흔들린다. 나도 안다. 이 녀석들도 인스타 본다. 동기들 입사 소식 본다. 초봉 4천만원 본다. 그리고 자기 통장 본다. 100만원. "경험이 중요하지." 내가 먼저 말한다. 얘들 설득하는 건지, 나 설득하는 건지 모르겠다. 회의 끝나고. 한 녀석이 조용히 물어봤다. "형, 솔직히 불안하지 않아?" "...응. 불안해." 처음으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녀석이 웃었다. "나도. 근데 형 믿고 한다." 그 말 듣고 나서. 더 불안해졌다. 진짜 경험이 뭔데 새벽에 생각한다. 경험이 뭐냐고. 1년 반 동안 뭐 했나.개발 배웠다. 독학으로. 유저 피드백 받았다. 직접. 피봇했다. 세 번. 투자 미팅 다녔다. 20군데. 거절당했다. 19번. 팀원들 월급 챙겼다. 내 돈 없어도. 밤샜다. 100일 넘게.이게 경험 아닌가? 근데 투자자들은 이걸 경험이라고 안 본다. 대기업 3년이 스타트업 1년 반보다 낫다고 한다. 억울하다. 근데 반박할 수 없다. 왜냐면. 내가 만든 서비스가 증명 못 하니까. MAU 2만. 매출 0원. 숫자가 말해준다. "경험이 중요하죠" 라고 말하는데, 정작 그 경험으로 만든 결과가 이거다. 웃긴다. 슬프다. 화난다. 그래도. 계속할 거다. 이게 핑계든, 변명이든. 내일 미팅 또 투자자 미팅이다. 오늘도 준비했다. 피치덱 수정했다. 정장 준비했다. 대답 연습했다. "대표님 나이가?" "26살입니다." "젊으시네요." "네, 하지만 요즘은 나이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울 보면서 연습한다. 설득력 있나? 모르겠다. 근데 이 말밖에 없다. 26살이 할 수 있는 말이 이거다. 시계 본다. 새벽 3시. 내일 미팅은 오후 2시. 11시간 남았다. 9시간 자고, 1시간 준비하고, 1시간 이동한다. 근데 잠이 안 온다. 유튜브 켠다. '20대 성공한 창업가' 검색한다. 영상 본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댓글 본다. "나이는 핑계다." "열정이 전부다." "경험은 만드는 거다." 맞는 말이다. 근데 위로가 안 된다. 영상 끈다. 노트북 덮는다. "경험이 중요하지." 혼자 중얼거린다. 내일도 이 말 할 거다. 모레도, 다음 주도. 이게 핑계인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근데 이 말 하면서. 진짜 경험을 쌓고 있다. 거절당하는 경험. 불안한 경험. 증명해야 하는 경험. 어쩌면 이게 26살의 진짜 경험인지도.내일도 또 들을 거다. "젊으시네요." 그리고 또 말할 거다. "경험이 중요하죠." 언제까지 이 말 할지는 모르겠다. 근데 이 말 안 해도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는, 계속 핑계 대야지 뭐.
- 13 Dec, 2025
주말이 없는 일상의 실체
주말이 없는 일상의 실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른다 아침에 눈 떴다. 핸드폰 봤다. 수요일이었다. 어제가 화요일인 줄 알았는데 월요일이었나 보다. 아니다. 일요일이었다. 휴일이었다는 걸 1시간 뒤에 알았다. 팀 슬랙에 메시지 없어서.창업하고 나서부터다. 요일 감각이 사라진 게. 월요일에 투자 미팅. 화요일에 개발. 수요일에 팀 회의. 목요일에 개발. 금요일에 또 미팅. 토요일에 개발. 일요일에 개발. 패턴이 없다. 아니, 패턴이 하나다. 계속 일한다. 대학 다닐 땐 금요일 저녁이 제일 좋았다. '이제 주말이다' 그 설렘. 지금은 금요일도 그냥 금요일이다. 내일도 카페 간다. 노트북 편다. 코드 친다. 휴식의 정의가 바뀌었다 휴식이 뭐였지? 예전엔 아무것도 안 하는 거였다. 침대에 누워서 넷플릭스. 폰 보다 잠들기. 그게 쉬는 거였다. 지금은 다르다. 일 안 하면 불안하다. 토요일 오후에 친구가 불렀다. 대학 동기. 취업했다는 애. "야, 오늘 저녁 한강 갈래?" 가고 싶었다. 진짜로. 근데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돌아갔다.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 그 시간에 신규 기능 하나 만들 수 있다. 투자 PT 자료 손볼 수 있다. "미안, 오늘 일 있어." 거짓말은 아니다. 일이 있긴 했다. 아니, 일을 만들었다.친구는 이해한다고 했다. "너 바쁘지, 창업가니까." 그 말이 위로인지 압박인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노트북 켰다. 코드 짰다. 3시간 동안. 그게 내 토요일 저녁이었다. 쉬었나? 모르겠다. 일했으니까 뭔가 했다는 기분은 든다. 근데 개운하진 않다. 일요일도 그냥 하루다 일요일이 제일 이상하다. 다들 쉰다. SNS 보면 브런치 사진, 공원 사진, 가족 모임 사진. 나는? 카페에 있다. 어제와 같은 자리. 같은 아메리카노. 주인아저씨가 말 걸었다. "주말에도 나오네요?" "네, 뭐... 할 게 있어서요." 아저씨는 고개 끄덕이고 갔다. 대단하다는 표정인지, 불쌍하다는 표정인지.일요일 오후 3시. 부모님한테 전화 왔다. "뭐해? 오늘 일요일인데." "일하고 있어요." "일요일에도 일해? 쉬어야지." 쉬고 싶긴 하다. 근데 어떻게? 런웨이 4개월 남았다. 투자 안 받으면 문 닫는다. 팀원 4명 월급 줘야 한다. 100만원씩이지만 그게 400만원이다. 한 달에 400만원. 4개월이면 1600만원. 남은 돈 2000만원. 계산하다 보니 전화 끊어져 있었다. 다시 걸지 않았다. 설명하기 귀찮아서. 아니다. 설명해도 이해 못 할 거 같아서.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팀원들한테 미안하다. 다들 20대 초반이다. 놀아야 할 나이다. 연애해야 하고, 여행 가야 하고. 근데 나랑 같이 카페에 앉아 있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아무도 불평 안 한다. 그게 더 미안하다. 지난주 일요일. CTO인 준혁이가 말했다. "형, 우리 주말에 쉬는 거 어때요?" 순간 멈칫했다. '쉰다고?' 생각했다. "그게... 지금 일정이 빠듯해서..." 준혁이는 웃었다. "농담이에요, 형. 저도 할 거 많아요." 농담이었나? 진짜였나? 모르겠다. 물어보기 무섭다. 우리 모두 주말을 포기했다. 아니, 주말이 없어진 거다. 대신 뭘 얻었나? MAU 2만. 좋은 건가? 모르겠다. 수익은 아직이다. 투자자들은 관심 없다. "재미있는데,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돌려 거절. 그럼 우리는 뭐하는 거지? 주말 없이 일하는데 결과는 언제 나오지? 성공한 사람들도 그랬대 밤에 유튜브 봤다. 성공한 창업가 인터뷰. "초기에는 주말도 없이 일했죠. 365일 24시간 일만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추억처럼. 나도 나중에 저렇게 말할까? '그땐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다' 이렇게? 지금은 모르겠다. 보람은 없고 힘들기만 하다. 조회수 보니까 500만. 댓글 3만 개. "역시 성공하려면 희생이 필요하네요." "저도 주말 반납하고 일할게요." "멋있습니다." 멋있나? 나는 왜 안 멋있게 느껴지지? 다음 영상도 봤다. 또 성공한 사람. "주말에 쉬는 사람은 경쟁에서 집니다. 남들이 쉴 때 일하는 게 성공의 비결이죠." 맞는 말 같다. 근데 피곤하다. 남들 쉴 때 일하면 성공한다. 그럼 나는 성공하나? 2년 뒤에? 5년 뒤에? 보장이 없다. 그게 제일 무섭다. 진짜 문제는 끝이 없다는 거다 주말에 일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끝이 안 보인다는 게 문제다. 다음 주도 이럴 거고, 다음 달도 이럴 거고, 내년도 이럴 거다. 언제까지? 투자 받을 때까지? 그럼 받고 나면? 그땐 더 바빠진다. 직원 늘고, 책임 커지고. 그럼 언제 쉬지? 대기업 다니는 동기는 말했다. "힘들어도 주말은 있잖아. 퇴근은 하잖아." 맞다. 걔는 금요일 저녁에 회사 나오면 월요일까지 자유다. 나는? 항상 일한다. 퇴근이 없다. 카페에서 집으로 옮기는 것뿐이다. 이게 맞나? 싶다. 성공하면 맞는 거다. 실패하면 틀린 거다. 그 판단은 나중에 난다. 지금은 모른다. 그냥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 가끔 현타 온다 지난주 토요일 밤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단톡방이 떴다. 모임 잡는다고. "다음 주 토요일 어때? 다들 시간 되지?" 다들 된다고 했다. 나만 빼고. "나는 힘들 것 같아. 미팅 있어." 거짓말이다. 미팅 없다. 근데 가기 싫었다. 가면 물어볼 거다. "요즘 어때? 잘 돼?" 대답이 없다. "잘 되고 있어" 라고 하긴 싫고, "망해가고 있어" 라고 하긴 더 싫고. 걔들은 주말에 만난다. 술 마신다. 얘기한다. 웃는다. 나는 카페에 있다. 혼자. 노트북 앞에. 누가 더 나은 삶인가? 모르겠다. 비교하기 싫다. 근데 자꾸 비교하게 된다. 동기 인스타 봤다. 제주도 여행 사진. "주말에 충전 완료!" 충전. 그게 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래도 계속한다 주말이 없다. 휴일이 없다. 쉬는 날이 없다. 근데 멈출 수가 없다. 이미 1년 6개월 달렸다. 여기서 포기하면 그동안 뭐였나? 팀원들 있다. 얘들 월급 줘야 한다. 믿고 따라온 애들이다. 부모님도 있다. "아들이 사업한다"고 자랑한다는데. 실패하면 뭐라 하지? 나 자신도 있다. 26살. 증명하고 싶다. 나이 어려도 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내일도 카페 간다. 모레도 간다. 그 다음 날도.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상관없다. 요일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계속 움직이는 거다. 멈추면 끝이니까. 결국 선택이었다 누가 시킨 건 아니다. 내가 선택했다. 창업을. 이 삶을. 주말 포기도 내 선택이다. 친구들 못 만나는 것도. 연애 안 하는 것도. 후회하냐? 아직은 아니다. 나중에 후회할까?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한다. 하루하루. 오늘이 수요일인지 토요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오늘도 뭔가 했다는 거다. 그걸로 족하다. 지금은.주말은 없다. 근데 멈추지 않는다. 이게 26살 창업가의 일상이다.
- 12 Dec, 2025
비수익화 2년, 이게 정상인가요?
비수익화 2년, 이게 정상인가요? 창업 18개월, 수익 0원 창업한 지 이제 1년 6개월. 정확히는 573일째다. 세어봤다. 수익은 얼마냐고? 0원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14만원. 누가 프로 플랜 결제했다가 환불했다. 그것도 3개월 전 얘기다. 요즘 VC 미팅 나가면 다들 묻는다. "트랙션은요?" "MAU 2만입니다." "수익화는요?" "... 준비 중입니다." 준비 중. 1년 반 동안 준비 중이다.다른 팀들은 어떤지 궁금하다 동아리 선배가 만든 팀. 작년에 첫 매출 냈다던데. 월 300만원이라고 했다. 적다고? 나한텐 부럽다. 창업 커뮤니티 가면 다들 말한다. "초기엔 수익 신경 쓰지 마세요." "PMF 찾는 게 먼저죠." 좋은 말이다. 근데 언제까지? 우리 서비스 쓰는 사람 2만 명이다. 그 중에 한 명이라도 돈 낼 생각이 있을까? 무료로 쓰다가 유료 전환하는 비율. 다른 B2C SaaS는 2-3%래. 우린 0.007%다. 계산해봤다. 14만원 ÷ 2만 명 = 7원. 1인당 생애가치 7원짜리 서비스.AI 스타트업은 다 이렇다더라 투자자들은 위로한다. "AI 스타트업은 원래 그래요." "기술 고도화가 먼저죠." 그래서 찾아봤다. 국내 AI 스타트업 사례들. A사: 창업 2년, 시리즈A 받음, ARR 미공개 B사: 창업 3년, 유료 전환 시작, MRR 500만원 C사: 창업 1년, 무료 베타, 10만 MAU 다들 비슷하다. 숫자를 안 밝히거나. 밝혀도 애매하거나. "트랙션 좋아요" = 사용자는 많은데 돈은 없다 "고객 피드백 받는 중" = 아직 팔 게 없다 "올해 수익화 목표" = 작년에도 그랬다 우리만 느린 건 아닌 것 같다. 근데 확신은 없다. 경쟁사 대시보드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다들 어떻게 버티는지.런웨이는 4개월 남았다 엔젤 투자 5000만원 받은 게 작년 2월. 지금 통장에 1600만원 남았다. 팀원 4명 월급 400만원. 사무실 없으니 고정비는 낮다. 서버비 50만원. 기타 잡비 50만원. 월 500만원씩 쓴다. 3.2개월 남았다. 시리즈A는 물 건너갔다. "수익화 모델 명확해지면 다시 연락 주세요." 브릿지 투자? 엔젤한테 또 손 벌리기 민망하다. 부모님한테 말씀드릴까 생각했다. "사업 자금 좀..." 말이 안 나온다. 지난주에 전화 왔었다. "졸업은 언제 하니?" "...다음 학기요." "취업 준비는?" 취업. 동기들 연봉 보면 4500 정도 받는다. 지금 내 월급(?)은 0원이다. 아니, 마이너스다. 생활비는 대출로 메꾼다. 유료화를 시도했다 3개월 전에 유료 플랜 냈다. 월 9900원. 반응은 좋았다. "가격 혜자네요!" "이 정도면 써볼게요." 결제한 사람: 7명. 1주일 후: 4명. 1개월 후: 1명. 지금: 0명. 피드백 받으려고 연락했다. "왜 환불하셨어요?" 대답은 비슷했다. "필요한 기능이 없어서요." "무료 버전으로도 충분해요." "자주 안 써서요." 우리 서비스가 뭔가? AI로 숏폼 자동 편집해주는 툴. 유튜브 쇼츠, 틱톡, 릴스 원클릭 생성. 경쟁 제품들 많다. 캡컷은 무료다. 프리미어 쓰는 사람들은 우릴 안 본다. 우리만의 강점? "빠릅니다." "퀄리티 좋습니다." "UI 직관적입니다." 근데 그게 돈 낼 이유가 되나? 팀 회의에서 물었다. "우리 서비스 너네는 돈 내고 쓸 거야?" 다들 웃었다. 대답은 안 했다. 피봇해야 하나 CTO 동현이가 말했다. "B2B로 가자." 기업한테 API 팔자는 얘기다. MCN, 에이전시, 미디어 회사. 일리 있다. B2C는 한 명당 만원 받기 어렵다. B2B는 계약 하나에 몇백 받을 수 있다. 근데 우린 B2C로 시작했다. 제품도, 브랜딩도, 모든 게. 피봇하려면 다시 만들어야 한다. 4개월 안에 가능할까? 투자자한테 물어봤다. "B2B 피봇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죠. 근데 레퍼런스는요?" "...없는데요." "그럼 먼저 몇 개 따 오세요." 계약 따려면 영업해야 한다. 영업 경험 있는 사람: 0명. 우린 다 개발자 출신이다. 코딩은 할 수 있다. 팔 줄은 모른다. 주변 반응이 달라졌다 작년엔 다들 응원했다. "창업 멋있다!" "젊을 때 해봐야지." 요즘은 다르다. "아직도 그거 해?" "힘들겠다..." 뉘앙스가 바뀌었다. 응원에서 걱정으로. 걱정에서 동정으로. 동기 결혼식 갔다. "너는 뭐 해?" "창업했어." "아... 힘들겠네. 돈은 벌어?" 예전엔 "오!" 였다. 이젠 "아..." 다. 부모님 친구분 만났다. "취업 안 하고 뭐 한대?" "아이구... 요즘 그게 되니?" 어머니가 변명하셨다. "걔가 원래 컴퓨터를 잘해요." 잘하는데 돈은 못 번다. 팀원들한테 미안하다 월급 100만원씩 준다. 서울에서 100만원으로 사나? 다들 부모님 지원 받으면서 버틴다. 나도 그렇고. 지난달에 민수가 말했다. "형, 저 알바 좀 해도 될까요?"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래, 해." 이게 맞나? 풀타임으로 일하는데. 알바를 또 해야 한다. 지원이는 졸업 유예했다. 부모님이 복학하래. "졸업장은 따 놔라." 맞는 말이다. 근데 복학하면 팀 나가야 한다. "형, 전 계속할게요." "괜찮아?" "...네." 목소리가 확신 없었다. 회의 끝나고 치킨 시켰다. 카드 긁었다. 한도 초과. "어? 잠깐만." 다른 카드 꺼냈다. 팀원들 눈치 봤다. 다들 폰만 봤다. 성공 사례를 보면 조급해진다 넷플릭스 보다가 AI 다큐 나왔다. 20대 창업가가 나온다. "저희 ARR 10억 달성했습니다." 창업 2년 만에. 부럽다. 아니, 화난다. 왜 우린 안 되는데? 우리도 열심히 한다. 매일 15시간씩 일한다. 무엇이 다른가? 아이템? 타이밍? 운? 아니면 우리가 못하는 건가? 링크드인 보면 더 우울하다. "Series A $5M raised!" "Reached $1M ARR!" 다들 잘한다. 우린 $0 ARR이다. 알고리즘이 비웃는 것 같다. 성공 스토리만 띄워준다. 실패하는 팀 얘기는 안 나온다. 망하면 조용히 사라진다. 우리도 그렇게 될까? 포기하는 상상을 한다 가끔 생각한다. 그만두면 어떨까? 복학하고. 졸업하고. 취업하고. 월급 400만원 받으면. 적금도 들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친구들이랑 술 마실 때. 카드 걱정 안 하고. 주말에 쉬고. 연차 쓰고 여행 가고. 평범하게 사는 거다. 근데 그 상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2년 버텼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그냥 시간 낭비였나? "창업 경험"이라고 포장해도. 면접관은 물을 거다. "성과는요?" "...수익은 없었습니다." 경험치는 쌓였다. 개발 실력, 기획 능력, 협업 스킬. 근데 이력서에 쓸 수 있나? "무수익 스타트업 대표 18개월" 그래도 멈출 순 없다 어제 새벽 4시. 코딩하다가 창밖 봤다. 불 켜진 창문이 몇 개 보였다. 누군가도 깨어 있다. 어쩌면 나처럼. 뭔가를 만들고 있을지도. 돈 안 되는 거. 아무도 안 믿어주는 거. 그래도 만들고 있는 거. 우리만 그런 건 아닐 거다. 팀 단톡방 봤다. 동현: "내일 새 기능 배포할게요" 민수: "피드백 10개 더 받았어요" 지원: "내일 회의 때 공유할게요" 새벽 4시에도 다들 일한다. 비수익화 18개월. 정상인지 모르겠다. 우리만 느린 건지도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우린 아직 포기 안 했다. 런웨이 4개월. 그 안에 뭔가 만들어야 한다. B2B든 피봇이든. 유료 전환율 올리든. 4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믿고 싶다.내일 또 투자자 미팅이다. 이번엔 수익 얘기 좀 덜 나왔으면 좋겠는데.
- 11 Dec, 2025
노션, 피그마, 슬랙을 다 혼자 세팅하는 대표의 번아웃
다 나였다 노션 세팅을 내가 했다. 피그마 컴포넌트도 내가 만들었다. 슬랙 채널 구조, 봇 연동, 알림 설정. 전부 나. 처음엔 좋았다. 재밌었다. 템플릿 찾아보고, 디자인 시스템 공부하고, 자동화 설정하면서 "우리 회사 워크플로우 개쩐다" 이랬다. 근데 지금은. "대표님 노션에서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슬랙 알림이 너무 많이 와요." "피그마 권한 설정 좀 해주세요." 다 나한테 온다.좋아서 한 거였는데 창업 초기에 툴 세팅은 진짜 재밌었다. 우리만의 시스템 만드는 거.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이 "레거시 시스템 개답답해" 하는 거 보면서 "우린 다르지" 했다. 노션은 3일 밤새서 구조 잡았다. 프로젝트 관리, 회의록, 지식 베이스, 채용 프로세스까지. 템플릿 30개 넘게 만들었다. 피그마는 디자인 시스템부터 시작했다. 컬러, 타이포, 컴포넌트. "나중에 디자이너 뽑으면 바로 쓸 수 있게." 근데 아직도 디자이너 없다. 내가 다 한다. 슬랙은 채널을 카테고리별로 나누고, 깃헙 연동하고, 구글 캘린더 싱크하고. "자동화가 생산성이다" 믿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다 내 목을 조를 줄. 책임이 되어버린 취미 문제는 내가 너무 잘 만들었다는 거다. 팀원들이 의존한다. 뭐 하나 바꾸려고 하면 "혹시 다른 곳에 영향 가는 거 아니에요?" 물어본다. 맞다. 간다.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 노션 데이터베이스 하나 수정하면 연동된 다른 페이지 3개가 깨진다. 피그마 컴포넌트 바꾸면 쓰고 있던 화면 20개를 다 체크해야 한다. "대표님이 만드신 거라 잘 모르겠어요." 이 말이 제일 무섭다. 내가 만든 시스템을 나만 알고 있다. 나만 고칠 수 있다. 개발도 해야 하고, 투자 미팅도 가야 하고, 서비스 기획도 해야 하는데. 노션 템플릿 버그 잡고 있다.가르쳐줘도 안 된다 "이거 제가 하겠습니다" 하는 팀원한테 가르쳐줬다. 1시간 걸렸다. 근데 다음날. "대표님 그거 다시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또 30분. 그다음 주. "저번에 알려주신 거랑 좀 다른 건데요." 그냥 내가 하는 게 빠르다. 5분이면 끝난다. 설명하면 30분이다. 그렇게 다 내가 한다. 효율적이니까. 근데 이게 쌓인다. "슬랙 알림 설정 좀 바꿔주세요." "노션에 새 프로젝트 페이지 만들어주세요." "피그마 프로토타입 링크 생성 어떻게 해요?" 하루에 10개씩 온다. 각각 5분이면 50분이다. 매일. 개발할 시간이 없다. 완벽주의의 덫 내가 만든 시스템이 너무 복잡하다. 인정한다. 근데 그때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확장 가능하게", "나중을 위해", "체계적으로". 노션 데이터베이스에 릴레이션 6개 걸려있다. 한 프로젝트 보려면 페이지 3개 넘어가야 한다. 피그마 컴포넌트는 3단계 중첩이다. 버튼 하나 수정하려면 마스터 컴포넌트 찾아 들어가야 한다. 슬랙 자동화는 조건이 너무 많다. "이 채널에 이 키워드가 포함되면, 저 채널에 알림을 보내되, 금요일은 제외." 팀원들이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하다. 나도 가끔 헷갈린다.버리지 못하는 이유 왜 안 버리냐고? 아까워서. 3일 밤새서 만든 노션 구조. 디자인 시스템 공부하면서 쌓은 피그마 컴포넌트. 자동화 설정하느라 본 슬랙 문서 200페이지. "나중에 쓸모있을 거야." "회사 커지면 필요해." "지금 버리면 나중에 또 만들어야 해." 근데 나중은 안 온다. 지금만 있다. 팀원이 "이거 너무 복잡한데 간단하게 못 바꾸나요?" 했을 때. 발끈했다. "이게 제일 효율적인 구조야.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근데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이게 정말 필요한 건지. 세팅 장인의 일상 월요일 아침. 아니 오후 1시. 일어나서 노션 본다. 새 프로젝트 생긴 거 확인. 템플릿 복사해서 세팅. 20분. 카페 가서 개발 시작. 슬랙 알림 온다. "대표님 권한 설정 부탁드려요." 5분. 코드 10줄 쓴다. 또 알림. "노션 데이터베이스 연동이 안 돼요." 들어가 본다. 릴레이션 꼬였다. 15분. 점심 먹고 미팅. 투자사한테 "저희 워크플로우는 완전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자랑한다. 뿌듯하다. 미팅 끝나고 노트북 펼친다. 슬랙에 메시지 7개. 전부 "대표님 이거..." 저녁 8시. 개발 시작. 진짜 시작. 새벽 2시. 팀원이 슬랙에 멘션한다. "내일 미팅 자료 피그마에 만들었는데 확인 부탁드려요." 들어가 본다. 컴포넌트를 잘못 썼다. 고쳐야 한다. 안 고치면 다음에도 똑같이 할 거다. 고친다. 30분. 새벽 4시에 잔다. 나만 할 수 있는 일 제일 무서운 건 이거다. "대표님 안 계시면 이거 못 해요." 맞다. 나 없으면 못 한다. 내가 만든 시스템이니까. 휴가? 못 간다. 가도 노트북 들고 간다. 슬랙 알림 온다. "급한데요." 아프면? 그래도 해야 한다. 5분이면 되는 건데 설명하면 30분이다. "버스 팩터 1" 이라는 말 안다. 한 명이 버스에 치이면 프로젝트가 멈춘다는 거. 우리 회사가 그렇다. 내가 버스에 치이면 노션, 피그마, 슬랙 전부 멈춘다. 근데 바꿀 수가 없다. 시간이 없다. 가르칠 시간에 내가 하는 게 빠르다. 악순환이다. 창업자의 저주 선배 창업자한테 푸념했다. "세팅 다 제가 해서 혼자 감당이 안 돼요." "그거 창업자의 저주야. 잘하면 계속 너만 하게 돼." 맞는 말이었다. 나 빼고 다 신입이다. 당연히 나보다 못한다. 근데 그게 문제다. "신입들 실력이 늘 때까지 기다려" 라고 하는데. 그 시간에 나는 번아웃 온다. "체계 문서화해서 인수인계해" 라고 하는데. 문서화할 시간에 그냥 내가 한다. "단순하게 만들어" 라고 하는데. 이미 복잡하다. 갈아엎을 시간 없다. 조언은 다 맞다. 근데 다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없다. 밤의 고백 새벽 3시. 노션 켜놓고 멍 때린다. "이거 왜 만들었지." 처음엔 우리 회사를 위해서였다. 효율적으로 일하려고.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려고. 근데 지금은 이게 날 잡아먹는다. 개발자인데 개발 못 한다. 대표인데 전략 못 짠다. 노션 관리자, 피그마 관리자, 슬랙 관리자가 됐다. 친구가 물어봤다. "요즘 뭐해?" "개발이랑... 세팅 관리?" "세팅 관리가 뭔데." "그냥... 툴 관리." 설명하기도 민망하다. "제품 개발은?" "하긴 하는데..." 사실 개발보다 세팅 관리에 시간 더 쓴다. 내려놓고 싶다 솔직히 다 버리고 싶다. 노션 복잡한 구조 다 지우고 심플하게. 피그마 컴포넌트 절반 삭제. 슬랙 자동화 꺼버리기. "그냥 심플하게 하면 안 돼요?" 팀원이 물었을 때 발끈했는데. 이제 알겠다. 맞는 말이었다. 심플한 게 좋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좋다. 나 없어도 돌아가는 게 좋다. 근데 이미 너무 많이 만들었다. 매몰 비용의 덫. 경영학 수업에서 배웠다. 이미 투입한 게 아까워서 계속 투입한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내가 그렇다. 다음 창업 때는 언젠가 이 회사가 성공하거나 망하거나 한다. 그다음에 또 창업하면. 노션은 심플하게. 템플릿 5개면 충분. 피그마는 기본 컴포넌트만. 나중에 디자이너가 만들게. 슬랙은 채널 10개. 자동화는 필수만. "확장 가능하게" 하지 않는다. "나중을 위해" 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만. 지금 할 수 있는 것만. 완벽한 시스템보다 돌아가는 시스템. 복잡한 구조보다 이해되는 구조. 나만 할 수 있는 것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근데 이건 다음 창업 얘기고. 지금은 어떡하지. 오늘 저녁 회의 "다음 주부터 노션 구조 좀 바꾸려고 해요." 팀원들한테 말했다. "심플하게. 누구나 수정할 수 있게." "지금 거 괜찮은데요?" "아니야. 너무 복잡해. 나도 헷갈려." "그럼 대표님이 바꾸시는 거예요?" "...응." 결국 또 나다. 근데 이번엔 다르게 한다. 팀원들이랑 같이. 천천히. "매주 금요일 1시간씩 같이 정리해요. 각자 담당 정하고." 될까? 모르겠다. 근데 안 하면 나 망한다.노션 탭 17개 켜놓고 뭘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든 미로에 내가 갇혔다.
- 10 Dec, 2025
연애를 접다 - 창업의 숨겨진 비용
연애를 접다 - 창업의 숨겨진 비용 언제부터였을까 창업하고 연애를 접었다. 정확히는 접은 게 아니라 자동으로 멈췄다. 마지막 데이트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1년 반 전쯤? 그때는 아직 학교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 하던 시절이었다. "바쁘다"는 말을 몇 번 했더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시작이었다. 창업하고 나서는 아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투자 받고, 팀 꾸리고, 개발하고, 유저 모으고.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연애는 자동으로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났다.근데 요즘 들어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연애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아니, 하고 싶기는 한 걸까? 데이팅 앱을 지운 날 창업 초기에 데이팅 앱을 깔았던 적이 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프로필을 만들었다. "26세, 스타트업 대표, AI 툴 개발 중." 사진은 데모데이 발표하던 거 올렸다. 나름 멋있어 보였다. 매칭은 꽤 됐다. 근데 대화가 문제였다. "언제 시간 돼요?" "이번 주는 좀..." "다음 주는요?" "그때도 피칭이..." 3번 정도 이러니까 상대방도 포기했다. 당연하지. 나도 나한테 짜증났을 거다. 결정적이었던 건 한 번은 진짜 시간 내서 만났던 날이었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데 슬랙 알림이 계속 왔다. 서버가 다운됐다고. 긴급 상황. "죄송한데 급한 일이 생겨서..." 30분 만에 자리를 떴다. 택시 타고 가면서 노트북 켰다. 상대방한테 사과 메시지 보냈는데 답은 안 왔다. 그날 밤 앱을 지웠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데이팅 앱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연애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연애할 여유가 없었다. 팀원들의 연애 팀원 중에 한 명이 최근에 연애를 시작했다. 좋아 보였다. 회의 끝나고 저녁 약속 있다고 먼저 간다. 주말에 연락하면 "오늘은 좀..."이라고 한다. 당연한 거다. 주말인데. 근데 나는 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부럽기도 하고, 동시에 약간 서운하기도 하고. '나는 매일 밤새우는데 쟤는 데이트하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었다. 완전 꼰대 마인드잖아. 대표가 이러면 안 되는데. 그 팀원한테 말했다. "좋겠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는데." 쟤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형도 하면 되잖아요." 그래, 하면 된다. 근데 어떻게?하루에 4시간 자고 일하는 사람이 연애를 해? 데이트 시간은 어디서 나와? 주말에 만나? 나는 주말도 일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부모님의 잔소리 한 달에 한 번 부모님이랑 통화한다. 요즘은 그것도 미루게 된다. 어머니가 물어보신다.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아니요. 바빠서요."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친구 소개팅이라도 해봐." "나중에요. 지금은 회사가..." "회사, 회사. 회사만 하다가 늙는다." 전화 끊고 나면 기분이 묘하다. 어머니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 26살. 동기들은 연애하고, 어떤 애들은 결혼도 준비한다. 나는 뭐하나 싶다. 근데 또 생각해보면, 지금 연애하면 상대방한테 미안할 것 같다. 시간도 못 내고, 돈도 없고, 미래도 불확실하고. 이런 상태로 누구를 만나? 그게 예의인가? 차라리 성공하고 만나는 게 맞지 않나. 그때는 여유도 있고, 자신감도 있고. 근데 성공이 언제인데? 런웨이 4개월 남았다. 다음 투자 유치 안 되면 문 닫을 수도 있다. 그럼 다 끝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애 생각할 여유가 어딨어. 새벽 3시의 생각 코딩하다가 문득 멈춘다. 새벽 3시. 인스타를 켠다. 타임라인에 동기 커플 사진이 올라온다. 제주도 여행. 좋아 보인다. 댓글을 단다. "부럽다 ㅋㅋ" 진짜 부럽다. 창업하면서 포기한 게 많다. 졸업, 취업, 안정적인 미래. 그리고 연애. 근데 연애는 좀 다르다. 다른 건 나중에 해도 되는데, 연애는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26살. 나이가 많은 건 아닌데, 창업하면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2년이 10년 같다. 30살 되면 어떨까. 그때도 이러고 있을까. 아니면 성공해서 여유가 생길까.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지금은 안 된다는 것.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노트북을 다시 켠다. 코드를 짠다. 이게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다. 숨겨진 비용 창업의 비용을 계산할 때 사람들은 돈만 생각한다. 투자금, 운영비, 월급. 근데 진짜 비용은 따로 있다. 시간, 건강, 관계. 그중에서도 연애는 가장 조용히 사라지는 것 같다. 극적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어느 날 보면 그냥 없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그냥 없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지금은 집중할 때'라고 생각했다. 성공하면 다 돌아온다고. 근데 요즘은 확신이 안 선다. 정말 돌아올까? 아니면 이게 새로운 일상이 되는 걸까? 팀원이 데이트하고 오는 걸 보면 생각한다. '나도 저랬는데.' 대학교 2학년 때는 연애가 제일 중요했다. 데이트 약속 있으면 다른 건 다 미뤘다. 지금은 반대다. 회사가 제일 중요하고, 다른 건 다 미룬다. 언제 바뀐 걸까. 그리고 다시 바뀔 수 있을까. 혼자 먹는 저녁 저녁은 주로 혼자 먹는다. 팀원들이랑 회의하면서 먹을 때도 있지만, 그건 회의지 식사가 아니다. 편의점 도시락을 사서 사무실에서 먹는다. 노트북 켜놓고. 유튜브 틀어놓고. 커플 유튜브가 추천에 뜬다. 클릭한다. 보면서 먹는다. '재밌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영화 보고, 같이 산책하고. 근데 나는 지금 뭐해. 편의점 도시락 먹으면서 커플 유튜브 보고 있어. 웃긴다. 진짜 웃겨. 포크를 내려놓는다. 갑자기 배가 안 고프다. 노트북을 닫는다. 코딩으로 돌아간다. 이게 더 편하다. 언젠가는 팀원이 물어봤다. "형은 언제 연애할 거예요?" "엑싯하고." "그게 언제인데요?" "모르지." "그럼 계속 혼자?" "그런 셈이지." 쟤가 웃었다. "그건 좀 슬프지 않아요?" 슬프다. 맞다. 근데 어쩔 수 없다. 지금은 회사가 먼저다. 팀원 4명 먹여 살려야 하고, 투자자들 믿음 배신하면 안 되고, 유저들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내 개인 감정은 그다음이다. 연애는 사치다. 지금의 나한테는. 그래서 접었다. 정확히는 접은 게 아니라 미뤘다. 나중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중으로. 카페에서 본 커플 오늘 카페에서 작업하는데 옆 테이블에 커플이 앉았다. 대학생으로 보였다. 과제하면서 장난치고, 웃고, 커피 나눠 마시고.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자꾸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모르면 나한테 물어봐야지." "너도 모르잖아." "그래도 같이 고민하면 되지." 같이 고민하면 된다.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혼자 고민한다. 회사 문제도, 개발 이슈도, 투자 전략도. 전부 혼자. 팀원들이 있지만, 결국 결정은 내가 한다. 책임도 내가 진다. 외롭다. 인정한다. 외롭다. 창업이 외로운 건 알았다. 근데 이렇게까지 외로운 줄은 몰랐다. 연애를 하면 덜 외로울까? 아니면 더 외로울까? 누군가 옆에 있는데 시간을 못 내면, 그게 더 외로운 거 아닐까. 차라리 지금처럼 아예 없는 게 나은 건가. 모르겠다. 카페를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커플들이 많이 보였다. 다 행복해 보였다. 4개월 후 런웨이가 4개월 남았다. 4개월 안에 투자 유치를 하거나, 수익화를 하거나, 아니면 문을 닫거나. 요즘은 이 생각밖에 안 난다. 연애? 그건 4개월 후에 생각하자. 살아남으면. 근데 4개월 후에 살아남으면 또 다른 4개월이 온다. 그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창업은 끝이 없다. 항상 다음 목표가 있고, 다음 위기가 있고, 다음 선택이 있다. 그러면 연애는 평생 못 하는 건가? 성공한 창업가들 보면 다들 연애하던데.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어떻게 한 거지? 시간을 어떻게 만든 거지? 아니면 나보다 더 잘해서 여유가 생긴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벅차기만 한 걸까? 진짜 비용 창업하면서 계산했던 것들이 있다. 투자금 5000만원, 월 운영비 1200만원, 팀원 월급 100만원씩. 다 맞았다. 숫자는 정확했다. 근데 계산 못 했던 게 있다. 새벽 4시까지 일하면서 잃는 건강. 친구들 모임에 못 가면서 멀어지는 관계. 부모님 전화를 피하면서 쌓이는 죄책감. 그리고 연애를 포기하면서 느끼는 외로움. 이건 숫자로 안 나온다. 엑셀 시트에 안 뜬다. 근데 진짜 비싼 비용이다. 돈은 다시 벌 수 있다. 투자 받으면 된다. 근데 시간은? 관계는? 감정은? 26살의 나는 다시 안 온다. 이 순간은 다시 안 온다. 그걸 지불하면서 창업하는 거다. 알고 있었나? 계약서에 이런 조항은 없었는데. 그래도 근데 후회는 안 한다. 연애 못 하는 거 외롭지만, 회사 만드는 건 재밌다. 새벽까지 코딩하는 거 힘들지만, 유저 피드백 오면 신난다. 돈 없는 거 불안하지만, 우리 서비스 쓰는 사람 2만 명이다. 이게 내가 선택한 길이다. 연애는 나중에 해도 된다. 30살에 해도, 35살에 해도. 지금은 이 길을 끝까지 가보고 싶다. 외롭지만, 또 그렇게 외롭지만은 않다. 팀원들이 있고, 유저들이 있고, 만들고 있는 뭔가가 있다. 그게 지금은 충분하다. 거짓말이다. 충분하지 않다. 근데 참을 수는 있다. 4개월, 아니 1년, 2년. 언젠가는 여유가 생길 거다. 그때 생각하자.새벽 4시. 오늘도 혼자 코딩한다. 외롭지만 익숙하다. 이게 내 일상이니까.